-부산기독교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
“은퇴는 목회의 마침표가 아닙니다.” 70세에 정년 은퇴한 뒤에도 25년째 부산 교계를 섬기고 있는 박선제 목사(95·대신침례교회 원로목사)의 걸음은 분주하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연합 활동에 참여해 왔으며 2년 전 출범한 부산기독교지도자협의회 대표회장을 맡아 부산기독교회관 건립에 기틀을 마련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1931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남성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군산 영명중고등학교에서 7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후 침례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7년 5월 16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신침례교회에서 40년간 목회하며 성도들을 섬겼으며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과 대표회장을 역임했던 부산기독교협의회(현 부산기독교총연합회)와 부산성시화운동의 태동에 산파 역할을 했던 그는 부산 기독교계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교단을 넘어 지역 교회가 연합하는 데에도 힘써 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 목사의 눈가에는 얼마 전 넘어지면서 생긴 멍이 남아 있었다. 회복 중에도 교계 행사에서 설교를 맡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건강과 근황부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역, 은퇴 후 목회자의 삶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부산기독교회관 건립과 부산 복음화 운동, 대신침례교회의 해운대 이전 배경, 최근 중동5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이뤄진 교회 존치 결의에 관한 생각도 함께 들어봤다.
95세의 박선제 대신교회 원로목사는 지금도 부산 교계의 여러 행사에 참석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오랜 목회와 연합사업을 돌아보는 그의 이야기는 지나온 성과에만 머물지 않았다. 부산 교회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지, 은퇴한 목회자는 어디에서 다시 사명을 찾을 수 있는지에 더 많은 말을 보탰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박 목사는 ‘소식(小食)’을 먼저 꼽았다. 특별히 정해 놓고 하는 운동은 없지만,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가능한 한 걷는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는 일과 함께 마음을 다스리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많이 먹지 않고 부지런히 걷습니다. 행사에 참석하러 다니는 것도 제게는 운동이지요. 무엇보다 마음을 평안하고 명랑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박 목사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는 늘 ‘연합’이라는 과제가 있다. 그는 지난해 뜻을 같이하는 부산 교계 지도자들과 부산기독교지도자협의회(이하 부기협)를 조직했다. 현재 회원은 약 100명이다. 오랫동안 부산 교계의 연합사업에 참여해 온 이들의 경험을 모아 개별 교회나 단체만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박 목사가 부기협 회원들과 품고 있는 숙원은 부산에 기독교회관을 마련하는 일이다. 박 목사는 부산 교계가 함께 사용하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껴 왔다고 했다. 역대 부산시장들과도 관련 의견을 나눴지만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실현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박 목사가 구상하는 기독교회관은 단순히 교계 단체들이 입주하는 건물이 아니다. 기독교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교회와 단체들이 만나 연합사업을 논의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의 길도 찾는 공간이다. 그는 이를 부산 교계 전체가 뜻을 모아 추진해야 할 공적인 사업으로 보고 있다.
“어느 개인이나 한 단체가 독자적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부산의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기독교 선교에도 도움이 되고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데에도 쓰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기협 회원들은 지난 10월 10일 버스 두 대로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기독교박물관을 탐방했다. 박 목사는 이 같은 만남과 탐방이 회원들의 생각을 넓히고 부산 교계가 함께 이룰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목사가 은퇴 후에도 기독교 악법 저지와 나라 살리기 운동, 부산 음화운동 등 교계 활동에 참여해 온 바탕에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다. 복음의 능력이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부산에 여러 기독교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경험과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퇴한 뒤 연합사업에 참여한 것은 부산 기독교계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단체마다 맡은 일이 있겠지만, 서로 힘을 모아 복음화와 사회봉사라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대신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을 떠올리자 박 목사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났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성도들로 가득 찬 예배당이다. 주일 낮과 밤은 물론 수요예배에도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교인들이 모여 예배드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교회의 부흥을 목회자로서 누린 큰 보람으로 꼽았다.
부산 교계에서 기도운동을 펼친 일도 기억에 남는 사역이다. 박 목사는 당시 영적으로 메말랐다고 느낀 부산 교계에 기도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인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도움을 받아 기도 모임을 조직했고 교단의 경계를 넘어 함께 기도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전도대회를 추진했던 일 역시 보람으로 기억했다.
박 목사에게 교회 부흥과 연합운동은 사람을 돌보는 목회와 떨어져 있지 않았다. 특히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려고 힘썼으며 교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살피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회고했다.
“교회가 성장하던 때에는 제 가정보다 교인들을 먼저 돌아볼 때가 많았습니다.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돌보려고 했지요.”
오랜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물었다. 박 목사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평신도와 협력하는 목회, 평신도 지도자 양성, 그리고 지역사회를 향한 봉사다.
박 목사는 교회에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일이 중요하지만, 예배를 마친 성도들이 삶의 자리로 흩어져 복음을 실천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목회자가 모든 일을 이끌기보다 평신도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고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했다. 지역이 겪는 어려움을 살피고 이웃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교회의 활동을 넘어 교회들이 함께 봉사에 나설 때 지역사회와 더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은퇴 목회자들에게는 목회 현장을 떠난 뒤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박 목사는 은퇴를 모든 사역의 끝으로 여기기보다 새로운 선교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역으로 목회할 때에는 시간이나 형편 때문에 하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조금 더 자유로운 자리에서 그 일을 돌아볼 수 있지요.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교회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 좋겠습니다.”
박 목사는 특히 은퇴 목회자들이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과 만나고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에 경험을 보태기를 바랐다. 자신도 현역 시절에 미처 다하지 못했다고 느낀 연합사업에 은퇴 후 더욱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대신교회가 부산 대신동을 떠나 해운대구 중동으로 옮긴 과정은 박 목사에게 또렷이 남아 있다. 대신동 일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교회는 이전 문제에 부딪혔고 법적 대응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해운대구 중동에 지어진 지 3년가량 된 교회당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는 기존 부지 처분 대금으로 건물을 매입해 이전했다.
“그때 어떻게 길이 열렸는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옮긴 뒤 이어진 김무건 담임목사와의 동행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박 목사는 약 13년 전 강릉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던 김 목사를 후임으로 청빙했다고 설명했다. 청빙 과정에서는 김 목사의 목회 이력과 주변의 추천을 살폈다.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그의 온유한 성품과 기도, 전도를 향한 열심에는 지금도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김 목사님은 기도에 힘쓰고 전도에 마음을 쏟는 목회자입니다. 지금까지 서로 이견 없이 교회를 섬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목회자라고 믿습니다.”
한 차례 재개발로 교회를 이전했던 대신교회는 해운대구 중동에서도 다시 재개발 문제를 마주했다. 중동5구역 재개발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기존부지에 교회를 존치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교인들이 기도하며 결과를 기다린 가운데, 최근 조합원 총회에서는 참석 조합원 약 90%의 찬성으로 교회 존치가 의결됐다. 교회와 조합도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박 목사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교인들의 단합과 지역사회와 맺어 온 관계를 떠올렸다.
무엇보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노력했으며 부산 교계 단체들의 협력과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의 중재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일심동체가 돼 교회가 평소 이웃을 위해 이어 온 작은 섬김에 의미를 뒀다. 경로잔치와 음악회, 독거노인 돌봄, 사랑의 쌀 나눔 등은 교회가 지역주민들과 만나 온 자리였다. 박 목사는 이러한 활동을 주민들과 조합원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봐 준 것이 존치 결정에도 힘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해 온 일들을 주민들이 기억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웃을 섬겨 온 작은 일들이 신뢰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감사하지요.”
오랜 세월 부산 교계에서 활동하며 곁을 지켜 준 이들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박 목사는 은퇴 후 여러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을 든든하게 후원해 준 전순환 장로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전 장로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고마움을 전했다.
인터뷰 끝에 박 목사는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으로 시편 133편 1∼3절을 들었다.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하는 기쁨과 그곳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노래한 말씀이다.
교회와 교단이 힘을 모으기를 바라며 살아온 박 목사가 오늘도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95세에도 교계의 만남을 찾아 걷고 교회가 함께할 일을 이야기하는 박 목사. 그가 바라는 부산 교회의 모습은 분명하다. 서로 연합하고, 성도들을 세우며, 지역의 이웃을 꾸준히 섬기는 교회다.
전광일 선임기자cgnnew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