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생애와 사상에 나타난 코드 읽기
★<기독사상과 문화비평> 에세이(1)
1.들어가기
<기독사상과 문화비평>의 3대 표지는 다음과 같다. (1)좌파 해체 논리의 문화비평적 해체. (2)방어적이 아니라 공격적인 기독변증과 문화비평. (3)21C 대한민국의 보수 이념 토대 재구성. 필자는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특히 1번 표지 ‘좌파 해체 논리의 문화비평적 해체’ 작업의 한 작은 갈래를 열어가고자 한다. 이 작은 갈래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서, 필자는 좌파의 원조, 좌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칼 마르크스를 중심 텍스트로 해서 좌파의 본질적인 코드 몇 가지를 추출하고, 이 코드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문화비평적 관점에서 조망해볼 것이다.
오랫 동안 기독교를 공격하고자 하는 자들은 성경을 비평하고 해부했다. 그런데 기독교 쪽에서 좌파의 중심 텍스트인 칼 마르크스를 비평하고 해부하는 접근을 필자는 보지 못했다. 과문한 탓도 있겠고, 이제 이런 작업을 시작하는 필자의 무지와 미숙함 탓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 땅에서 이런 접근을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최소한 영어권 원서 쪽에서라도 이런 접근을 보여주는 저서를 찾는 문헌 작업을 최근 들어서야 시작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어쨌든 필자는 새로운 길, 낯선 길로 들어서고 있다.
2.영국 산업혁명, 초기 자본주의의 병폐, 그리고 칼 마르크스의 등장
1760년대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변화로 인해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 혁명은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유럽 근대 사회 성립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산업혁명은 면제품 수요의 증대로 말미암아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고, 동력으로 사용된 증기 기관이 기계 공업 등 제반 산업분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은 이를 계기로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산업 사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공장들이 세워지고 도시들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농촌 인구가 대량으로 도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부녀자와 미성년자 취업과 같은 사회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했다. 점차 산업혁명의 부정적인 국면, 자본주의의 어두운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공장 주인들은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자 했다. 어떤 공장 주인은 돈을 적게 주기 위해 어린이들까지도 일을 시켰다. 급기야 하루 16시간씩 일을 시키면서도 끼니는 고작 한 번밖에 안 주는 악덕 자본가들도 나타났다. 공장의 기계들은 아주 조악하고 위험했으며, 작업 중 사상자가 발생해도, 공장 주인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작업중 다치면 보상은커녕 공장에서 쫓겨나는 판국이었다.
3.칼 마르크스 생애와 사상에 나타나는 몇 가지 코드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에서 중요한 코드적 사건과 사고 몇 가지를 뽑아내면 다음과 같다(코드적 사건과 사고 몇 가지로 어떻게 칼 마르크스 전체 사상을 규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론적 논증은 이 글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세밀한 논증과 각주를 필요로 하는 작업은 사실 이런 저널적인 글쓰기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가 집필 중인 원고 속에서는 당연히 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변명 삼아 밝혀둔다. 이 글에서는 일단 두 가지 코드만 뽑기로 한다.).
(1)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1818년 5월 5일 독일에서 유대인 기독교 가정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태인에 대한 불이익을 피하고자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직전에 개신교로 개종한 집안에서 마르크스는 6살이 되던 1824년 개신교 세례를 받았다. 1835년 8월 김나지움을 졸업하면서 열일곱 살의 마르크스는 자신의 일생이 인류의 행복과 해방을 향한 것이 될 것임을 약속하며 “온 힘을 다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택한다면… 우리는 초라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 명의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장차 인간 마르크스의 삶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예감할 수 있다.
(2)1845년 여름 마르크스는 노동 운동의 지도자 바이틀링을 만났다. 당시 바이틀링은 프루동과 함께 독일 이주 수공업자들이 조직한 ‘의인동맹’(義人同盟;Bund der Gerechten)이라는 노동자 조직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동맹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영국 등에 지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이 ‘의인동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공산주의자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재조직되었다. 이와 함께 “모든 인간은 형제다!”이던 ‘의인동맹’의 구호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공산주의자 동맹’의 구호로 대체되었다.
(3)1848년 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 동맹’의 위임을 받아 『공산당 선언』을 완성했다.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동 집필로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직전 발표되었다. 『선언』은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계급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에 따라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4)마르크스는 1859년에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저술을 출간했다. 이 책 ‘머리말’에서 그는 “물질적인 생산양식은 삶의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차원들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생활이 의식을 좌우한다.” 유물론적 역사관을 주장한다. 그는 1867년에 『자본론』 제1권을 출판한다. 『자본론』은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자본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밝히면서 나아가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에 의해서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규명하고 있다. 『자본론』 2권(1885)과 3권(1994)은 사후에 엥겔스에 의해 출판되었다-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칼 마르크스(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참고.
이상으로 위의 네 가지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1)에서 칼 마르크스의 삶의 지향점이 당시 산업혁명 당시에 나타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무산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노력과 투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투쟁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일련의 정치적인 결사를 통한 투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3)(4)에서와 같이 『자본론』 등의 저술 작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필멸과 프로레타리아트 계급의 필승의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이론적 투쟁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개선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마르크스의 사고는 어떤 의미 층위들을 갖게 되는 것일까?
2.(2)에서 나타나듯이 ‘의인동맹’이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필자가 보기에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자본자들은 악하고 불의한 존재이며, 오직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공산주의자 동맹’만이 의롭고 선한 존재라는 함축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칼 마르크스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코드가 된다.
이 두 가지가 왜 중요한 코드가 되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박남훈 목사
<기독사상과 문화비평> 편집주간
•부산대영문과/고신대학원
•문학평론가
•도서출판세컨리폼 대표
•주안교회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