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울 엄마… 그리운 울 엄마…"
-성암교회 23년 시무
-부산노회 노회장 역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내 어머니,
그 이름만 불러도 목이 메이는 내 어머니.
모진 북한 땅에서 외롭게 살아가셨을 가엾고도 그리운 울 엄마.
74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저린 가슴으로 엄마를 부릅니다.
1950년 6월, 전쟁의 포성이 한반도를 뒤덮고
불길과 절망이 온 땅을 삼키던 그 날,
열일곱 어린 나는 국군에 입대해 북진하는 전선에 섰습니다.
그러나 중공군 30만 대군의 인해전술 앞에 전세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하룻밤 사이 찾아온 1·4후퇴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찾아온 울 엄마.
“3개월만 기다리세요. 꼭 돌아올게요”
함경북도의 매서운 12월, 눈보라를 헤치며 오른 미군 수송선.
나는 그렇게 남쪽 나라 대한민국으로 내려왔습니다.
포항 구룡포의 잔잔한 포구. 맑은 하늘과 푸른 들판,
그리고 너무도 고요한 평화. 하지만 나는 다시 총을 들고
양구 북방 최전선 수색대로 향했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쟁터, 차디찬 참호 속에서
북녘 하늘에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수없이 불렀던 이름.
“울 엄마…”
강원도의 겨울은 너무도 추웠고 배고픔은 뼛속까지 사무쳤습니다.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견뎌낸 3년 4개월. 그리고 휴전.
끝내 막혀버린 고향 가는 길 앞에서 나는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습니다.
늠름한 대한의 청년으로 제대했지만 기다려줄 엄마 없는 세상은
나를 천하의 고아처럼 서럽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엄마…”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나를 남쪽으로 보내놓고 엄마는 날마다 남쪽 하늘만 바라보셨겠지요.
외아들이 보고 싶어 그 긴 세월을 눈물로 사시다가 마지막 순간,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한 채 어떻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내 가슴은 무너져 내립니다.
이제 내 소원은 단 하나입니다.
고향 산천에 서서 엄마를 목 놓아 부르며 이 맺힌 한을 풀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3·8선은 74년 세월 동안
우리 모자의 길을 끝내 막아버렸습니다.
엄마…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전쟁터에서 복음을 만났습니다.
국군 병사였던 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군병이 되어
평생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살아왔습니다.
사역을 마친 지금은 따뜻한 대한민국 품 안에서
국가유공자로, 은퇴목사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와의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3개월이면 돌아가겠다”던 그 말이 30년이 되고, 60년이 되고,
어느덧 74년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엄마…
정말 죄송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오늘도 엄마를 부르며 가슴 저리게 울고 있습니다.
이제 내 나이 아흔둘. 엄마 곁으로 갈 날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늘을 향해 목 놓아 불러봅니다.
그리운 울 엄마… 그리운 울 엄마…
이제는 모든 눈물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잠드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