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병사에서 난민촌의 목회자로, 또 은퇴 후에는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영성 사진가로서의 살아온 삶을 증언했다.
전동윤 목사(91세).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전 목사는 ‘원로목사’라는 예우보다, ‘노회 공로목사’라는 명칭보다 스스로의 신앙고백을 더 귀히 여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암교회(구 서성교회)에서 23년간 목양하고 예장(통합) 부산노회 노회장까지 역임했음에도 그는 어떤 호칭도 받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고도 깊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의 평생을 이끈 이 문장은 하나의 신앙표어가 아니라, 살아낸 삶 그 자체였다.
그 진실은 45여 년 전 한 사건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성창기업 사목으로 섬기고 있을 때, 회사로부터 ‘회사 십일조’라며 전달받은 1억 원.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개척교회 10곳에 다 나누어 헌금했다. 주보와 명단을 챙겨 회사에 보고했다. 정작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교회’만 떠올렸던 그의 행보는 오히려 회사 경영진의 심금을 울렸고, 그가 가진 믿음의 깊이를 세상에 보여 준 목양 일화로써 지금도 회자된다.
본지가 인터뷰 요청을 하자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다.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겸손함을 넘어 거의 고집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은퇴 후에도 목회자의 걸음을 아름답게 걸어가는 선배의 삶을 통해 후배들에게 도전을 주었으면 바란다”는 간절한 요청 앞에서 그는 조용히 마음을 열었다.
전동윤 목사의 여정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정면으로 통과한 ‘한 사람의 역사’이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한 병사는, 훗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평생 목양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전 목사는 그 신앙의 문장을 목회와 삶의 모든 장면에서 진실하게 살아냈다.
70세에 현장 목회를 내려놓은 뒤에도 그의 사명은 멈추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병사의 일기』, 난민촌에서의 서원 목회를 담은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 은퇴 후 전국을 돌며 촬영한 영성 사진집 『아름다운 십자가』까지 전 목사의 인생 2막은 단순한 노년이 아니라 “섬김과 고백으로 빚어낸 또 하나의 사역”이었다.
그는 사진집 발간 후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안식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 드릴 특별한 섬김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교회의 아름다운 십자가를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개신교, 구세군, 성공회, 천주교까지… 각 교회마다 다른 역사와 사연이 있지만 십자가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강화도에서 마라도까지, 산골의 오래된 예배당에서 도시의 현대식 성전까지… 그 십자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길 바랍니다.”
91세의 나이에도 전 목사는 여전히 배우고, 기록하고, 나누며 산다.
전 목사는 4남을 두었으며, 장남은 美 뉴저지 초대교회 전광욱 장로, 차남은 열기구 파일럿인 전광일 권사(부산 온누리교회), 삼남은 대연성결교회 전광현 안수집사, 막내는 예장(통합) 대구신광교회 전광민 위임목사다.
전동윤 목사의 삶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간증이다.
전쟁의 참호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신앙이 은퇴 후의 사역까지 이어지며, 지금도 여전히 빛없이 그러나 진실한 믿음의 향기로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인터뷰/본지 김성원 사장
■전쟁의 기억을 붙들어 쓴 『병사의 일기』
“사람의 생명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전동윤 목사는 6‧25 전쟁이 발발한 그해 12월, 국군 3사단 22연대 수색대에 입대해 3년 4개월 동안 전선을 누볐다. 백발이 성성한 지금도 그는 그때의 기억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생생하다”고 말한다.
“전쟁터는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당연시되고, 죽음이 흔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죽였는가, 혹은 죽일 뻔했는가 하는 죄책감이 평생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휴전이 선언되던 순간, 갑자기 멎은 포성과 정적 사이에서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붙들었다.
“같은 민족인데, 왜 죽여야 했는가? 인간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이기에?”
전쟁이 남긴 상처는 그를 오래 괴롭혔다. 그의 치유는 항상 같은 자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시작됐다.
“전우들의 묘 앞에 서면 ‘당신들의 피가 이 나라의 자유를 지켰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습니다.”
전 목사는 그 마음을 담아 『병사의 일기』를 집필했다. 후대와 군 장병들에게 전쟁의 실체와 평화의 소중함, 그리고 생명 존귀의 가치를 전하고자 했다.
“전쟁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병사의 일기는 결국 ‘평화의 외침’입니다.”라고.
■난민촌에서 시작된 ‘서원목회’
“주님께 드린 약속 앞에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전동윤 목사는 신앙생활의 시작부터 하나님과의 ‘서원’이 깊었다. 제대 후 경주읍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전 목사는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자 하나님께서 그를 북한 월남민들의 난민촌으로 보내셨음을 느꼈다. 그곳을 자신이 복음을 전할 교구로 삼고 “하나님께 드린 약속의 자리”로 삼았다.
난민촌 목회는 말 그대로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현장이었다. 배고픔, 가난, 병, 외로움 등 삶의 모든 결핍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는 기독교의 복음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저는 이곳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어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원목회 5년째 되던 어느 날, 구미의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누구든 흔들릴 제안이었지만 그는 밤새 눈물로 기도하며 다음 날 사양의 편지를 보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서원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 자리가 제 사명입니다.”
그는 과거의 자신처럼 서원을 쉽게 잊어버리는 신앙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후손들에게 자신의 선택을 전해주기 위해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를 펴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찬송가에서 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고 부릅니다. 그 고백은 반드시 삶에서 지켜야 합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고백
“목회는 지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 목사는 오늘의 목회환경이 좋아졌음에도 정작 기도와 영성이 메말라 가는 현실을 우려했다.
“목회자의 눈물이 마르면 교회도 메말라집니다. 교회는 이벤트가 아니라 기도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그는 과거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면 당회장인 자신이 먼저 금식하며 기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그 결의를 따르며 세상 법정 앞에 서는 일은 ‘치욕’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목회자는 온유와 겸손, 청빈으로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의 시작이 거룩했다면, 마무리는 더 거룩해야 합니다.”
그의 마지막 당부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목회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라는 고백을 잊지 마십시오.”
■은퇴 후 새로운 길, 포토에세이 출간
“십자가 없는 풍경은 마음에 담지 않았습니다”
70세에 은퇴한 뒤 그는 영적 긴장이 풀리며 허전함을 느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십자가를 찍는 또 하나의 영성활동을 허락하셨다.
강원도, 김해, 인천, 강화도… 전국을 누비며 그는 ‘아름다운 십자가’를 찾아 나섰고, 이 여정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강화도의 한옥 성공회 성당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석가래 마다 새겨진 십자 문양과 태극 문양, 한국 전통 건축을 배려한 선교사들의 깊은 시선, 그리고 성당 앞 커다란 범종에 새겨진 십자가는 그를 한참 동안 기도하게 만들었다.
“선교사님들은 한국 문화를 존중하며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자연 풍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십자가가 없으면 그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그 사랑을 작품으로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순절에 전시회를 열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먼저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는 그의 기도, 영성, 신앙고백이 그대로 스며 있다.
■ ‘아름다운 십자가’에 담긴 메시지
“제 작품은 결국 제 신앙고백입니다”
전동윤 목사가 만든 수많은 작품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순교의 피가 스며 있는 자리의 십자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당의 십자가, 산속 작은 교회의 십자가… 그는 그 앞에서 늘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복음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 한가운데는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보는 이들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신앙으로 기록한 한 평생
전동윤 목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렇게 요약한다.
“저의 기록은 모두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후대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전쟁터의 병사에서 난민촌의 목회자로, 그리고 은퇴 후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성 사진가로, 그의 인생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91세의 이 노(老)목사가 여전히 “하나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지금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순례자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