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도의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던 몽골 울란바토르. 본지 김성원 사장, 온누리교회(부산) 김지형 장로, 전광일 열기구 파일럿이 함께한 이번 탐방(10월12일~15일)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서지연 선교사 기념수양관(은혜수양관)”이 폐쇄 위기에 놓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조항영 선교사(울란바토르선교교회)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사모가 가이드로 동행한 가운데, 일행은 2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 기숙사, 지교회, 수양관 등 주요 선교 현장을 숨 가쁘게 둘러봤다. 수도 중심의 심한 차량 정체 속에서도, 일행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선교현장 탐방에 뜨거웠다.
“그곳엔 눈물과 기도가 쌓여 있었다.”고 확인한 일행은 현지에서 복음을 붙잡고 사는 선교사 부부의 삶을 바라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차가운 바람보다 뜨거운 헌신이 그들을 녹였고,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탐방을 마친 일행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믿음의 현장”이라고,
울란바토르선교교회와 서지연 선교사 기념수양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눈물과 헌신으로 세워진 복음의 기념비였다.
그곳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다시금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기도와 관심이 절실해 보였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는 말씀이 지금, 초원의 땅 몽골에서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울란바토르 현지 르포/본지 김성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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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땅으로 변해가는 초원의 수도
'용감한'이라는 뜻을 가진 몽골은 면적 156만㎢, 남한의 15배에 달하는 광활한 국토를 가졌지만, 인구는 350만 명 남짓. 그중 절반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집중돼 있다.
티베트 불교(라마교)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기독교인은 1% 미만이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은 분명히 뿌려지고 있었다.
울란바토르는 해발 1,350m에 위치한 고지대 도시로, 도심 곳곳에서 ‘야인시대’ 같은 한국식 식당과 한국 기업의 간판이 눈에 띈다. 그만큼 한국과의 연결고리가 깊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함 뒤에는 여전히 복음의 손길이 닿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이 있다.
울란바토르선교교회 설립 배경
울란바토르선교교회는 예장통합 서울노회 파송 선교사 조유상 목사가 1999년 10월 5일 창립했다.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온 몽골인들과 그 가족들을 품으며 시작된 이 교회는, ‘전도합시다’라는 표어 아래 복음이 전혀 없던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왔다.
그 결과, 현지인 스스로 예배를 인도하는 자립 교회로 성장했으며, 거러더크 평강지교회(2000), 바양찬드망 신광지교회(2001), 종모드 지교회(2002) 등 네 곳의 지교회를 개척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복지센터”를 세워 구제와 사회봉사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도시 외곽 빈민가에 건립된 기숙사에서는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머물며 신앙과 삶을 함께 배운다.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기도와 헌신으로 운영되는 이 기숙사는 몽골 복음화의 토대가 되고 있다.
몽골 ‘서지연 선교사 기념수양관’
‘서지연 선교사 기념수양관(은혜수양관)’은 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아름다운 초원과 강, 산이 어우러진 그곳에는 젊은 한 여인의 헌신과 눈물이 서려 있다.
서지연 선교사는 1974년 서울 출신으로 금호교회에서 교사, 성가대원, 청년부로 섬기며 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2001년 울란바토르선교교회 단기선교 봉사팀원으로 출발 중 불의의 사고로 27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짧지만 뜨거운 삶은 한국교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해 8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와 울란바토르선교교회, 금호교회가 뜻을 모아 그녀를 공식 선교사로 추대했고, 부모의 헌신적 헌금이 더해져 기념수양관이 세워졌다.
수양관은 이후 수많은 선교팀과 현지 청년들의 신앙 훈련의 장이 되었으며, 몽골 교회 부흥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건물이 노후되고 지원이 끊겨 지금은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하늘과 맞닿은 12,000평 부지 위에 세워진 ‘서지연 선교사 기념수양관(은혜수양관)’은 지금도 바람결 속에서 한 젊은 선교사의 헌신과 눈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수양관은 예배실과 게르 숙소, 그리고 ‘서지연 선교사 기념관’으로 구성돼 한때 한국교회 단기선교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몽골선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낡은 시설과 부족한 운영 지원으로 지금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초라한 건물, 기념관에 전시된 ‘서지연 선교사의 마지막 고백’에 있다. 몽골로 떠나기 전, 그녀는 유언장에 부모님과 가족에게 남긴 작별의 인사와 함께 “주님을 위해 내 생명을 드리겠다”는 간절한 고백을 남겼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세 번째 몽골선교 길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며, 그 유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녀가 생명을 걸고 품었던 몽골의 영혼들, 그 헌신의 자리 위에 세워진 기념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청년의 순교적 믿음이 새겨진 ‘신앙의 증언’이자, 오늘의 교회가 잃어버린 첫사랑을 일깨우는 상징이다.
현지 울란바토르선교교회의 열악한 재정 지원과 환경 속에서도 서지연 선교사가 남긴 순수한 복음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이제 그 불씨가 다시 타오를 때, 은혜수양관은 다시금 ‘몽골선교의 전초기지’로 거듭날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신앙의 여정, 서지연 선교사 기념관 재건의 필요성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서지연 선교사 유언>
“엄마, 아빠!
저 없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전 그냥 죽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행하다가 죽은 거니까 기뻐하세요.
그동안 말씀 안 듣고 마음 속상하게 해 드린 일 죄송해요.
제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게 되어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불효라고 하는데 제가 큰 불효를 하게 되었네요.
저 없더라도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비록 전 없지만, 언니랑 오빠랑 있잖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슬퍼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하늘나라에서 지켜 볼거니까 너무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나쁜 일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탁드릴게요
오빠!
언니 행복하게 해줘야 해
그리구 교회도 잘 나오구 교사도 하고 말이야.
내가 없으니까 언니랑 오빠가 봉사해야지
떠나는 길에 부디 내 맘을 아프게 하지 말아줘
오빠야~ 엄마 아빠께서 원하시는 일이 뭔지 알지?
그 뜻대로 해드려
이건 내 부탁이자 소원이야 (처음이자 마지막)
꼭 그렇게 해 주길 바래
엄마 아빠 오빠 언니~~
부디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고 앞으로의 날들에 웃는 날만 함께 하기를...
2001. 7. 8 서지연 올림”
<딸이 그리운 아빠의 편지>
“사랑하는 지연아~~
네가 하늘나라에 간지 어언 10개월이 되어 가는구나.
저녁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창동역에 가는데 꽃가게에서 카네이션꽃을 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아하! 내일이 어버이날이구나! 문득 생각이 드는구나.
작년 이날 네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엄마” 하면서 네 어머니 가슴에 꽃을 달아주면서 “효도 많이 할게요” 하는 일이 생각나는구나.
올해에는 카네이션꽃을 달아줄 네가 없구나. 네가 효도하겠다고 한 것이 먼저 하늘나라에 간 것이니. 지연아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에 전철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너도 지금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겠지? 눈물이 나와서 글씨가 자꾸 아물거리는구나. 네가 앉았던 찬양대 석에는 다른 청년이 앉아 있으며 청년부원 들과 소년부 교사를 볼 때 마다 네 생각이 얼마나 나는지 너는 알고 있지? 사람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지만 얼마나 많은 날을 하나님 전에서 울며 보냈는지 너는 알고 있지? 오늘 저녁도 하나님 앞에 나와 울며 보낼 것 같구나.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 일이 바쁘다고, 퇴직 후에는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못한 주제에 교회 일 한다고 핑계를 대며 너에게 소홀하게 하여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한 것 정말 미안하구나, 남산 타워에 한번 가보자고 조를 때 조금 있다가 가자고 하였는데 영원히 가보지 못하게 되었구나. 가슴이 미어지는 것같이 아프구나, 하늘나라에는 그보다 좋은 것이 많을 거야 주님께 구경시켜 달라고 하려므나.
김영삼 권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우님들 아프단다. 몇일 전에는 최열옥 집사님이 몸이 불편하여 입원 했단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온 성도님들이 이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특히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철야하며 기도 중이야. 예수님께 고쳐주시라고 말씀드려줄래?
네가 오빠 내외에게 부탁했던 대로 교회 출석 잘하고 효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그리고 언니가 임신했단다. 너도 기쁘지? 벌써 금호역이야 내려야겠어 또 연락할게.
2002.5.7 21:25 아빠가
추신: 부모님께 더욱 잘하겠다는 편지와 함께 오빠가 아침에 꽃바구니를 보내왔단다. 이것을 받고 나니 더욱 네 생각이 간절하구나. 보고 싶다.”
‘믿음⦁소망⦁사랑⦁은혜의 집’ 기숙사
2005년, 울란바토르선교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몽골 외곽 빈민촌 한켠에 세운 ‘믿음 소망 사랑 은혜의 집’은 이름 그대로 ‘믿음과 소망, 사랑과 은혜’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4개 동 40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기숙사는 초기에는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위한 숙소로 문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신앙의 품 안에서 꿈을 키울 수 있는 보금자로 제공됐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믿음⦁소망⦁사랑⦁은혜’를 실천의 이름으로 삼은 이곳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영적 회복과 사회적 돌봄이 함께 이루어지는 선교의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과 직장을 이어가는 청년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몽골 사회에서 기독교의 따뜻한 빛을 비추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낡은 시설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 어려워졌다. 석탄을 때며 겨울을 나는 수준의 낙후된 환경 탓에,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더 나은 거처로 떠나야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지금은 오갈 데 없는 어려운 이웃들이 머무는 ‘사랑의 쉼터’로 변모했다. 교회는 여전히 그들을 품고, 한 생명이라도 더 따뜻하게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에는 더욱 감동적인 사연이 전해졌다. “보일러가 고장 나 겨울엔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자, 해운대순복음교회 유진성 담임목사와 보일러 기술자인 이해동 장로가 발 벗고 나섰다. 이해동 장로는 직접 몽골 현지를 찾아 1주일간 체류하며 전면 보수공사를 진행, 얼어붙은 방들을 다시 따뜻하게 되살려냈다.
교회의 지원과 장로의 헌신이 더해져 완성된 이 ‘작은 기적’은 먼 타국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증거가 되었다.
울란바토르의 찬바람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으로 피어난 온기의 이야기, 그곳에는 지금도 은혜의 집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울란바토로선교교회 개척 ‘큰빛교회’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의 척박한 빈민촌 한켠, 눈발이 휘몰아치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작은 공동체가 다시금 ‘믿음의 집’을 세워가고 있었다. 강제 철거로 삶의 터전과 함께 교회까지 잃었던 ‘큰빛교회’(울란바토르선교교회가 개척한 교회)가 일부 보상금을 발판으로 재건의 벽돌을 하나둘 쌓아 올리고 있다.
공사 현장에는 추위를 잊은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담임 비레치치게르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이 목장갑을 끼고 인부들과 함께 부속품을 나르며 교회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 아직은 임시로 세워질 예배당이지만, 그들의 손끝에서는 ‘믿음의 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있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만 있다면 어떤 자리라도 상관없습니다.”
비레치치게르 목사는 목장갑을 벗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어 일행을 게르(천막) 안으로 안내해 몽골 전통음식 만두와 우유, 과자를 내놓았다. 잠시의 대접 속에서도 그의 눈빛에는 재개발로 인한 교회 이전의 고단함, 그리고 그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사명의 의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이곳은 단지 예배당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요, 이웃이 마음을 쉴 수 있는 복지센터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큰빛교회’는 신앙 공동체를 넘어 지역사회를 품는 따뜻한 등불이 되고 있었다.
일행이 떠날 무렵, 담임목사는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한 여인을 소개했다. 여덟 명의 자녀를 둔 그 가정은 교회가 삶의 버팀목이자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비레치치게르 목사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해도, 주님 안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으니 우리는 부자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몽골의 겨울, 그러나 ‘큰빛교회’의 현장은 믿음의 열기로 따뜻했다. 낡은 게르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합심기도는 눈보라를 뚫고 하늘로 올랐고, 그곳을 찾은 일행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