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부활신앙의 부활을 생각하며
[칼럼]부활신앙의 부활을 생각하며
  • 함동근 총회장
  • 승인 2017.04.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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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근 총회장

해마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 오면 부활절을 생각하게 한다. 교회마다 사순절과 부활절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매년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 행사를 마치자마자
마치 국경일에 기념식을 치르고 이듬해까지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처럼 다음 부활절까지 1년 내내 부활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이 원하신 바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믿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었음을 아셨을 때 그 곳에 계시지 아니한 것을 기뻐하셨다. 제자들이 부활신앙을 얻기 위한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부활신앙만을 갖고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현재의 부활신앙을 갖게 하시려고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시더니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님은 현재 부활의 주님이시기에 죽은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그리고 주께서 부활절에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친히 부활하셨다. 지금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현재의 부활신앙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활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 계신다. 부활신앙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는 데서 더 나아가 매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의 임재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내 육체’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진짜’(real) 부활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추억 속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다시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돌아가서 헛 그물질하던 제자들처럼(요 21:1∼5),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처럼 체념하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처럼(눅 24:13∼24), 부활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생생한 새 역사의 시작이 새 언약의 증표이다. 우리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실은 매주일이 부활절이고, 매일 매순간이 부활절이다. 우리 모두 금번 부활절에는 부활신앙이 부활되어 그의 능력으로 어떤 절망도 이기고 승리하는 부활신앙의 증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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