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회의원(분당갑)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 성황
안철수 국회의원(분당갑)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 성황
  • 교회복음신문/한국기독타임즈
  • 승인 2022.06.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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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프라임호텔서 교계지도자 등 참석
대선 중도 사퇴, 인수위원장, 분당갑 출마 등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주최
지난 6월 24일(금) 오후 5시 프라임호텔(부산)에서 가진 '국회의원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에서 안철수 의원(분당갑)은 의사가 되게 된 배경, 컴퓨터 백신 개발, 정치 삶, 대선 중도 사퇴 배경, 대통령 인수위원장, 분당갑 국회의원 출마 등에 대한 얘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지난 6월 24일(금) 오후 5시 프라임호텔(부산)에서 가진 '안철수 국회의원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에서 안철수 의원(분당갑)은 의사가 되게 된 배경, 컴퓨터 백신 개발, 정치 삶, 대선 중도 사퇴, 대통령 인수위원장, 분당갑 국회의원 출마 등에 대한 얘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나영수 목사)가 부산이 배출한 정치지도자 안철수 국회의원(분당갑)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을 지난 624() 오후 5시 프라임호텔(부산)에서 가졌다.

안철수 국회의원(분당갑)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에 교계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안철수 국회의원(분당갑) 당선축하 및 초청 특강에 교계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초청특강에는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현국 목사와 임원,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김명석 목사와 임원, 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임영문 목사, 손정목 부산고총동문 회장, 전성근 범천의원(안철수 의원의 부친 고 안영모 원장은 부산의 슈바이처로 불림/범천의원 49년간 운영) 이웃주민 대표 등이 참석, 부산을 방문한 안철수 국회의원을 축하했다.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나영수 목사의 내빈소개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나영수 목사의 내빈소개

김명석 목사(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예배는 십계명 낭독, 박재한 장로(부산원로장로연합회 회장)의 대표기도, 정태영 목사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감사)의 성경봉독(신명기 31:7-8), 이현국 목사(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위대한 지도자 계승'이라는 제목의 설교, 최인천 장로(나라사랑부울경기총 상임회장)의 헌금기도, 박근필 목사(나라사랑기도회 대표회장)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김명석 목사(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의 1부 예배 사회
김명석 목사(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의 1부 예배 사회

또 애국가 제창에 이어 메조소프라노 김옥수 교수의 축송이 있었다.

이어진 2부 당선축하 및 특강은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박경만 목사의 사회로 진행돼 정수남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의 강사소개,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나영수 목사의 내빈소개가 있었으며 축사로는 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임영문 목사와 손정목 부산고등학교 총동문회(안 의원 출신 고교) 회장이 차례대로 등단,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현국 목사(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위대한 지도자 계승'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이현국 목사(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위대한 지도자 계승'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이어 전성근 범천의원 이웃주민대표가 안철수 국회의원에게 꽃다발 및 운동화 한 켤레를 증정했으며 곧바로 안철수 국회의원이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등단, 특강의 시간을 가졌다.

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임영문 목사의 축사
(사)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이사장 임영문 목사의 축사
손정목 부산고등학교 총동문회(안 의원 출신 고교) 회장의 축사
손정목 부산고등학교 총동문회(안 의원 출신 고교) 회장의 축사

이후 질의 및 응답, 단체사진촬영을 가졌으며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 최구영 목사의 만찬기도와 함께 화기애애한 교제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박경만 목사의 사회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박경만 목사의 사회

이날, 안철수 국회의원은 특강에서 의사가 된 배경으로 의사였던 아버지가 평소 남을 위해 헌신해 온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던 자신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서울 의대에 진학하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수남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의 강사소개
정수남 나라사랑부울경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의 강사소개

이어 대학시절 매주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1년 후배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박근필 목사(나라사랑기도회 대표회장)의 축도
박근필 목사(나라사랑기도회 대표회장)의 축도

안 의원은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얘기도 이어갔다.

사람 몸에 있는 여러 자료들을 논문으로 쓰려고 하니 컴퓨터가 필요해서 컴퓨터 공부를 했는데, 의외로 백신을 개발, 무료로 보급을 하게 됐다“34년 전인 88년도에 만든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정태영 목사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감사)의 성경봉독(신명기 31:7-8),
정태영 목사 (부산기독교총연합회 감사)의 성경봉독(신명기 31:7-8),

지난 2012919일 정치를 시작했다는 안철수 의원은 전국 선거를 다 지휘해 본 현역 유일 정치인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양당 중심에서 소위 줄투표또는 바람몰이현상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를 개인기로 뚫은 셈이다.

박재한 장로(부산원로장로연합회 회장)의 대표기도
박재한 장로(부산원로장로연합회 회장)의 대표기도

“3김 이래 38석에 해당하는 교섭단체를 만든 최대의 성과도 거뒀는데, 무슨 돌파력이 없다든지, 실행력이 없다든지 이런 것들은 다 왜곡하는 프레임이지 저는 말보다 실행이 앞서는 사람이란 건 의사를 할 때나 교수를 할 때나 회사 경영을 할 때나 정치를 할 때나 이미 저는 다 실적으로 증명을 했는데 정치 쪽은 워낙에 이렇게 왜곡하는 말들을 많이 하니까 마치 사람이 약하고 실행력이 없다고 하는데 약한 사람이 10년 동안 어떻게 버티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대선 출마 중도 포기에 대한 안 의원의 입장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저는 111일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대선 tv 토론 네 번까지 해보고 그때 상황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실력보다는 정권 교체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면 내려 놓겠다는 마음을 이미 출마 때부터 설정해 두고 뛰었다고 전했다.

안철수 의원은 현 정부 출범을 위한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얽힌 얘기와 7대 시대정신이라는 밑그림을 소개했다.

최인천 장로(나라사랑부울경기총 상임회장)의 헌금기도
최인천 장로(나라사랑부울경기총 상임회장)의 헌금기도

언론에서는 제가 국무총리나 경기도지사 출마 얘기들이 있었지만 실은 대통령인수위원장을 맡아 완주하게 되면 그런 자리에 갈 수 없을뿐더러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위한 밑그림을 제대로 잘 그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그런 자리에 욕심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지난 정부가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현안들이 쌓여 있는 만큼, 7대 시대 과업으로 첫 번째, 공정과 상식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하는 일이며 두 번째는 20년 주기의 미래 먹거리와 미래 일자리를 창출, 세 번째가 지역 균형 발전, 네 번째는 아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지속 가능성, 다섯 번째가 국민통합, 여섯 번째는 대한민국 안보, 일곱 번째가 국제사회에서 우리 역할을 다하는 위상정립 등을 7대 시대정신으로 꼽고 그림을 그렸다고 전했다.

끝으로 안 의원은 국회의원 분당갑 출마 배경을 소개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지난 528일인가 인수위 끝나고 그다음에 바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는데, 선거에 뛰어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제가 26년 전 만든 안랩이 바로 분당갑에 있는데, 사실 분당갑 허허벌판에 제가 제일 먼저 회사를 만들었으며 그때 설립한 회사의 연고지가 분당갑지역이라서 자신있게 출마했고 열심히 뛰었다.

전성근 범천의원 이웃주민대표가 안철수 국회의원에게 꽃다발 및 운동화 한 켤레를 증정했다.
전성근 범천의원 이웃주민대표가 안철수 국회의원에게 꽃다발 및 운동화 한 켤레를 증정했다.

그리고 또 저는 제 선거뿐만 아니고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 50군데를 다녔다. 저희 분당갑 중심으로 12년 만에 처음으로 성남시장 바꾸고 그다음에 성남시의회 다수당 및 역사상 분당갑에서 가장 많은 시의원 도의원을 당선시켰다. 저희 분당갑하고 연결돼 있는 용인시장이 제 친구인 80학번 중앙일보 이상일 기자인데 어쨌든 거기 열심히 가서 지원유세도 해서 당선되고 광주시도 당선되고 그다음에 제가 두 번 유세 갔던 군포시와 안성시도 당선됐다.

메조소프라노 김옥수 교수의 축송
메조소프라노 김옥수 교수의 축송

굉장히 큰 보람이지만 이제 시작이다. 당선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잘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다가올 여러 가지 국정 현안 과제들 이런 것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19, 20, 21대 국회의원(3)인 안철수 의원은 부산중앙중부산고등학교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및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다음은 안철수 국회의원의 특강 일부를 발췌해서 옮겨 봤다.

안철수 국민의힘 국회의원(분당갑)이 차분한 어조로 특강을 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국회의원(분당갑)이 차분한 어조로 특강을 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인데 부모님이나 또는 다른 분들이 저를 돌봐줘서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닙니까? 공부만 해도 밥도 먹고 신발도 신고 자동차도 타고 다니고 그거 다 다른 분들이 만들어 주신 건데 이렇게 사회에서 도움만 받는 게 아니라 저도 사회 한 사람인데 뭔가 다른 분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꿈을 어릴 적부터 꿨습니다. 그래서 의사이신 아버님 뒤를 이어서 이제 의사의 길을 가려고 서울 의대에 진학을 했습니다.

의대에 들어가서도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뭔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래서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서울의 구로동은 서울에서 제일 어려운 동네였습니다. 거기 가서 이제 봉사 진료를 하게 됐죠.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뒤로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제가 본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그때 저희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봉사 진료를 하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줄을 서서 진료를 받습니다. 근데 거기 못 오는 분들도 있어요.

류마티스 관절염이 심해서 걷지를 못하니까 그러면 저희 학생들 중에서 이제 팀을 나눠서 왕진을 갑니다. 저는 왕진 팀이었습니다. 왕진을 간 곳이 바로 할머님하고 손녀하고 둘만 사는 집이었습니다. 가정사를 들어 봤는데,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손녀 딸 이렇게 4명의 가족이 살았답니다. 아버님이 이제 병에 걸렸습니다. 그 당시는 월급이라는 게 하루 종일 일해도 자기 밥 먹으면 그게 다일 정도밖에는 돈을 못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네명 식구에서 어머님 혼자서 일을 해서 밥을 먹어야 되는 처지입니다. 결국은 어머니가 못 견디고 도망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래서 결국은 할머니와 손녀만 남았어요.

손녀가 초등학교 때는 할머니가 폐지도 줍고 해서 손녀를 키웠는데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서 움직이지를 못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손녀가 중학교 1학년 때 신문팔이 하면서 할머니를 먹여 살리던 가정에 제가 왕진을 간 겁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제 왕진을 가서 류마티스 관절염 약을 드렸는데 어느 날 가보니까 그 앞에 상가 등이 달려 있더라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왜 돌아가셨냐 보니까 손녀가 못 견디고 가출을 해 굶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느낀 것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소설보다 끔찍한 게 바로 우리 세상이구나. 이런 세상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런 것들도 굉장히 많이 배웠던 그런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제가 어릴 때부터 받은 그런 혜택들 그것을 일부라도 돌려드릴 수 있고 우리 사회를 위해서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주 어릴 때 아버님 보면서 그리고 의과대학에서 의료 봉사하면서 제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는 의료봉사 활동을 매주 갔습니다. 거기서 1년 후배 제 아내 만나서 결혼도 하고요. 그래서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의대를 졸업한 다음에 뭘 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하는 것도 아버님처럼 의미가 있는 일인데 저는 조금 욕심을 냈어요. 병의 원인을 밝히거나 치료 방법을 개발하면 수천 수백만 명을 치료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 일을 하려고 연구를 시작한 겁니다.

의학 연구를 하려다 보니까 사람 몸에 있는 여러 자료들을 모아 논문을 쓰려고 하니까 컴퓨터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컴퓨터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의대 공부하기 싫어서 딴눈 판 게 아니고 의학 논문 쓰려고 컴퓨터 공부를 했는데 이게 그냥 인생을 바꿔나 버렸습니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최초로 발견이 돼 90% 컴퓨터가 바이러스 감염이 되고 피해가 속출됐습니다. 그때 제가 다행히 컴퓨터 실력이 있어서요. 백신을 만들어서 무료로 보급을 한 게 34년 전에 만든 프로그램이 이렇게 지금까지 사용될 줄은 몰랐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거의 일주일이면 몇 명씩 찾아와서 독점인데 이거 팔아서 돈 벌자고.. 100만 장자 된다고 저한테 그랬는데 제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평생 공부만 하고 받기만 하면서 살다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그 자체가 너무너무 보람이 있는데, 뭐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27세에 의대 교수가 됐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까지 백신 만드느라 잠 못 자서 혼났습니다. 그런데 7년 동안 하루 서너 시간 자고 의사 일도 하고 백신도 만들고 했습니다. 7년 지나니까 드디어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바이러스가 매년 2배씩 늘어나니까 새벽 3시간 가지고는 감당이 안 됐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제가 하루 늦어지면 국가적인 손해가 엄청나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이것만 하든지 아니면 제 동기 중 제일 빠른 교수가 되어 풀타임으로 해야 하는 학생 지도를 해야 하는지 1년을 고민했습니다. 사실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서울의대 나와서 박사에 교수에 제일 먼저 되고 탄탄대로를 가고 있는데 그거 포기하는 게 사실 솔직히 쉽지 않았는데 결국 의사는 저 말고도 많지만(의사 번호 3만 번째) 백신 만든 사람은 저 말고는 없으니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의사 의대 교수 그만두게 됐습니다. 백신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회사가 지금 제 지역구(분당갑)에 있는 분당에 안랩을 26년 전에 만들게 됐습니다. 만들고 나서 10년 정도 지났습니다. 그때도 일반인에게는 무료로 공급을 했거든요. 그게 다 바이러스입니다. 주변에서는 회사를 하면 다 팔아야지 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급하고 정부하고 기업에만 돈 받고 팔면 그거 회사 망한다고 했지만 제가 그러기 싫더라고요. 오히려 기업이라는 게 돈만 버는 게 그게 기업인가 법인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기업도 하나의 법적으로는 인격체 사람이거든요. 그러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 또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사회를 위한 일도 하는 게 좋은 일인데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다행히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안랩 26년 동안 정부 지원금 한 푼도 안 받고 그냥 기업과 정부에다가 판매한 돈을 가지고 일반인에게 무료 배포하는 백신 연구개발비를 스스로 냈습니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성 있게 지금까지 거의 한 해도 매출액 감소 없이 26년 동안 매년 매출이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제 빚진 마음을 어느 정도 또 제대로 갚을 수 있는 기회다 싶어서 10년 한 다음에 스스로 그만뒀습니다. 대주주인데도 누가 쫓아내는 사람도 없었고 그때가 실적 사상 최대인 해였거든요. 그때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이후 저는 카이스트 교수로 학생들 가르치고 서울의대 교수로 서울대 융합대학원 학장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는 또 교수로서의 길을 걸었던 겁니다.

그때 제가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안랩 지분의 절반을 기부했습니다. 그 이유가 보통 성공하면 내 잘나서 성공한다 다 내 거야 보통 이러지 않습니까? 저는 그게 자본주의의 굉장히 나쁜 점이라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십일조 정신(내 것의 일부를 바친다)도 사실은 그렇습니다만 성공을 이룬 게 전부 자기가 잘나서 전부 자기 게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가 여건을 만들어 주고 주위 사람들이 도와줘서 성공을 한 것이다고 본 저의 관점에서는 1/10이 아닌 절반이라고 봤습니다. 절반은 내가 노력을 하는 거지만 절반은 사회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안랩 지분 절반을 기부를 해서 동그라미 재단을 만들었는데, 당시 시세로 약 1,500억 정도가 됐습니다. 그리고 분해가 되는 플라스틱 환경을 위해서 그것부터 해서 그다음에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 연구, 그다음에 사이버 보안 피싱 방지 이런 쪽의 연구비들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로서 계속 있었습니다만 학생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교수가 할 수 있는 건 학생에 대해서 조언하고 위로해주고 공감해 주는 거지 이 학생들이 제대로 직업을 구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런 제도를 만드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치를 통해서 이 일을 해보겠다. 정치는 공익을 위한 봉사다라고 생각하고 지난 2012919일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으시겠지만 아직 10년이 안 됩니다. 99개월 됐습니다. 99개월 동안 모든 전국 선거를 다 지휘해 본 유일한 현역 정치인입니다. 38석에 해당되는 교섭단체를 만든 3김 이후 최대의 성과도 거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돌파력이 없다든지 실행력이 없다든지 이런 것들은 다 왜곡하는 프레임이지 저는 말보다 실행이 앞서고 하는 사람이라는 건 의사를 할 때나 교수를 할 때나 회사 경영자를 할 때나 정치를 할 때나 이미 저는 다 실적으로 증명을 했는데 정치 쪽은 워낙에 이렇게 왜곡하는 말들을 많이 하니까 마치 사람이 약하고 실행력이 없다고 하는데 약한 사람이 10년 동안 이렇게 버텨 왔겠습니까?

제가 사실 지금 와서 처음으로 한번 말씀을 드려보면 작년 111일 대선 출마를 했습니다. 그때 사실 불안했던 게 한쪽은 민주당 후보는 아시다시피 문제가 많고 또 국민의힘 당은 아무래도 초보자이고 그래서 한번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 가장 실력이 있는지를 국민들이 선택을 한다면 제가 봉사를 할 것이고 만약에 그렇지 않고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세력에 대해서 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러면 저는 대선 tv 토론 네 번까지 해보고 그때 상황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실력보다는 아무리 초보자라도 정권 교체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면 접는 쪽으로 이미 저는 111일 날 마음을 먹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중간에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제가 제일 처음 나선 것이 저는 인수위원장을 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보통 때는 인수위원장보다 다른 거를 제가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가지 자질도 많고 장점도 많으시지만 일단은 국정 전반에 대해서 들여다볼 그럴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진짜 중요합니다. 처음에 청사진을 잘 그려야 실수를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갈 수 있거든요.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가 뭐고 어떤 것들을 먼저 해야 되는지를 잘 짚어주면 그만큼 실수를 안 하고 잘하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인수위원장을 선택하는 순간 국무총리와 경기도지사를 포기했습니다. 언론에서 잘 몰라서 그런데요. 경기도지사나 총리를 하려면 인수위원장 임기 절반 정도 하고 사표 내야 합니다. 보시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갔던 김은혜 후보 같은 경우는 중간에 당선인 대변인 사표 내고 뛰어들었고요. 또 국무총리 발표는 인수위 중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인수위원장을 맡아서 끝까지 완주를 하는 사람은 총리나 또는 경기도지사 출마가 불가능합니다.

이는 거의 상식입니다. 저 중간에 그만둘 생각 없었거든요. 그림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우선은 시대적인 과제, 즉 우리 한국인들이 정말로 바라는 그런 일들을 먼저 정리를 하고 거기에 따라서 국정과제를 만드는 게 정말로 중요하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부 때 숙제를 안 해서 그게 쌓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모세의 10계명도 있지만 저는 7대 시대 정신(시대적 과제)을 저 나름대로 정의를 했습니다.

저는 7가지 시대 정신으로 첫 번째 공정과 상식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하는 일 그건 상식당연한 것이고 두 번째는 미래 먹거리 미래 일자리를 만드는 일 미래 먹거리 미래 일자리20년 주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중화공업 선박 철강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이 1980년대 1990년대 20년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다음에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초고속 인터넷 망하고 벤처로 IT 붐을 일으켜서 2000201020년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 이번 정부가 다시 미래 먹거리를 안 만들면 우리는 먹고 살 게 없습니다.

지금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만 잘 나가고 있는데 3년 남았어요. 중국이 따라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 만들면 큰일 납니다.

세 번째가 지역 균형 발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살았던 부산하고 지금 부산하고 비교해보면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더 벌어지는지 이거는 비정상입니다.

독일에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학교 다니고 자기 고향에 있는 회사 다니고 자기 친척 친구들 함께 여생 보내면서 자기 고향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한 100200년 있으면 사라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뭐냐 지역 불균형 발전 때문입니다. 대구하고 부산에서 매년 청년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전부 수도권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지역은 고령화됩니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간 젊은 사람들은 좋은 직장도 별로 없고 집도 없으니까 결혼을 못해요. 저출산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저출생 고령화 문제 해결하려고 돈을 5년 동안 150조 쏟아부었는데 아무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원인을 저는 잘못 파악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이게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단순하게 무슨 어린이집이 투자가 부족하고 학교 교육비가 사교육비가 높은 것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쫓아가 보면 지역 불균형 발전, 즉 한마디로 부산이 다시 서울 수도권만큼 제2의 수도처럼 번성하면 우리나라는 다시 살아날 겁니다. (중략)

미국 서부에 있는 아마존이 워낙 잘 돼서 아마존 제2본사를 세우려고 공모를 했는데, 미국의 전주에서 자기들이 유치하겠다고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버지니아주가 아마존 제2본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완전 반대쪽이죠. 유치 조건으로 토지 100년 무상 임대, 법인세 20년 감면, 아마존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있으면 정확하게 그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지역의 가장 좋은 대학교 아마 버지니아 테크 정도 될 겁니다.

대학교에 학과를 따로 개설, 아마존 직원들을 교육시켜서 내보내는 이러한 조건을 내니까 아마존이 제2 본사를 짓겠다고 한 것이죠. 근데 지금 이제 거의 다 지어가고 있는데 벌써 거기는 난리 났습니다. 번성하고 경제 살아나고 완전히 주가 그냥 활기가 넘치거든요. 결론은 이겁니다. 공기업 이전 소용없습니다. 지방 정부가 법적인 권한과 돈을 가지고 사기업들을 유치하는 권한을 가지면 됩니다. 지금은 중앙정부가 법적인 권한과 돈을 다 가지고 안 내놓잖아요.

부산 엑스포 유치하려고 하면 그 돈을 부산시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중앙 정부가 다 가지고 있기에 빌고 빌어 허락을 받아서 돈을 받아야 돼요. 이게 말이 됩니까 정말로 중요한 사업이라면 부산시 예산 다 털어가지고 엑스포 유치 해야죠. 그러니까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들을 대폭 이양해서 지방 정부끼리 서로 싸움을 붙여서 좋은 기업들을 유치하게 하는 그게 균형 발전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인수위원장 하면서 위의 세부사항을 다 집어넣었습니다.

네 번째는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거 그게 지속 가능성이거든요.

다섯 번째가 국민통합입니다. 국민통합 안 하고 위기를 극복한 나라는 세상에 없거든요.

우리나라는 국민통합의 세계적인 대표적인 나라라고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시켜서 산업화 성공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금 모으기 운동에서 국민 통합해서 IMF 위기를 극복한 사실은 서로 갈라져서 싸운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친 열매입니다.

여섯 번째는 자국안보입니다. 우리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만큼 국방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번째가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데 국제사회에서 우리 역할을 해야 됩니다.

저는 미국 유펜에서 공학 석사 했고 워튼 스쿨에서 MBA 했고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1년 반 동안 비지팅 스칼러 했었고요. 또 일본 동경에 지사 만들어서 비즈니스하고 그리고 북경하고 상해에도 지사 만들어서 비즈니스 하고 저는 나름대로 글로벌 비즈니스 등 여러 가지 경험들이 많습니다. 해외 나가면 일본 편밖에 없고요. 우리나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의 위상만큼 국제적인 공헌을 많이 안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해야 됩니다. 내부적으로 어렵지만 외부적으로 잘해서 우리 편을 들게 만드는 외교력을 길러야 합니다.

현 정부는 숙제가 많아졌습니다.

528일인가 인수위 끝나고 바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시작됐죠. 재보궐선거에 뛰어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제가 만든 안랩이 바로 분당갑에 있습니다. 분당갑에 제일 먼저 회사 만든 게 저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허허벌판에 판교역하고 안랩 사업하고 둘밖에 없었어요. 그때 시작했던 회사 연고지가 분당갑이라서 이곳에 출마하게 됐는데, 열심히 뛰었습니다. (생략)"

취재/사진 김다솜 기자cg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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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진 2022-07-28 15:04:13
오00 기자의 월간 ‘종교와 진리’와 이00 권사의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카페는 선지자를 죽이는 이단입니다.



(관련 기사) https://bibleandchurch.kr/archives/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