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00M-UP/선한영향력 발휘 (주)JEICO 대표이사 변도우 장로
■Z00M-UP/선한영향력 발휘 (주)JEICO 대표이사 변도우 장로
  • 교회복음신문/한국기독타임즈
  • 승인 2020.05.16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교사들의 안식년 쉼터 ‘게스트하우스’ 1, 2관 마련
(주)JEICO, 특화된 산업용 무선 리모컨 전문제조업체
산업용 무선 리모컨 전문제조업체로써, 21세기 산업용 무선 제어 관련 산업 분야 선두 주자의 길을 걷고 있는 (주)제이코의 대표이사 변도우 장로(동삼교회)는 안식년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온 선교사들의 안식처인 '게스트하우스' 마련에 심혈을 쏟고 있다.
▲산업용 무선 리모컨 전문제조업체로써, 21세기 산업용 무선 제어 관련 산업 분야 선두 주자의 길을 걷고 있는 (주)제이코의 대표이사 변도우 장로(동삼교회)는 안식년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온 선교사들의 안식처인 '게스트하우스' 마련에 심혈을 쏟고 있다.

지난 2003년 개인 제조업으로 등록된 ()제이코는 산업용 무선 리모컨 전문제조업체로써, 천장 및 타워 크레인, 호이스트, 윈치, 엘리베이터 등의 무선 원격 제어분야 연구와 생산에 특화된 전문기술업체이다.

원거리 조종에서부터 안전상 무선 조종이 필요한 산업용 크레인과 철강 발전소를 비롯한 각종 산업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방폭 지역에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21세기 산업용 무선 제어 관련 산업 분야에 선두 주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제이코 대표 변도우 장로가 교계와 지역사회에 선한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영도문화원 원장으로서 영도문화 발전 및 외국인유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과 무엇보다 안식년을 맞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 2~3개월 간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선미션하우스)’ 1,2관 마련 등 섬김과 열정을 안고 뚜벅뚜벅 걷고 있다.

<대담 인터뷰 / 본지 김성원 사장>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 94-1(J빌딩) 소재 (주)제이코 본사 사옥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 94-1(J빌딩) 소재 (주)제이코 본사 사옥

-영도문화원 원장으로서 고신대학교 외국인유학생을 위한 발전기금을 전달하셨던데요.

고신대 안민 총장님 생각이 외국인 학생들 중에 학비도 대주고 본국에 돌아가서 선교활동도 할 수 있다는 좋은 생각을 갖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도 참여를 결정하셨는데, 마침 제가 옆에 있다 보니 한 구좌를 받은 것이죠. 저희 교회는 외국인학생을 정식 교육전도사로 청빙하고 학비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사례비까지 지불하기로 했죠.

저 역시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시기에 먼 타국에서 학업에 대한 열정을 지닌 고신대학교 외국인학생들을 위한 발전기금을 전달하게 됐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지난해 3월 영도문화원 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영도는 제게 있어 아주 특별한 지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의 첫 출발을 영도에서 시작하였고 영도에서 태어난 아내를 맞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으며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영도가 아니었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저에게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품과 같은 지역입니다. 안민 총장님의 추천으로 원장에 취임케 됐습니다. 막상 문화원에 들어가 보니 제가 얼마나 문외한이었냐면 문화회관과 문화원 이 두개를 전혀 몰랐어요. 문화회관과 문화원은 따로 있었더라고요. 일반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문화회관은 영도구청소속이고 공연이라든지 전시 등 회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맡고 있으며, 문화원은 문체부 소속이더라고요 각 지역마다 문화원이 생긴 게 향토문화를 개발하고 진흥시키는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 문화원이더라고요. 어떤 문화원은 따로 있는데도 있고 대부분의 문화원은 영도처럼 문화회관 안에 별도의 장소에 있습니다.”

변도우 장로는 "죽음의 고비도 많이 넘겼고, 기업도 이 만큼 축복을 받았는데, 남은 인생을 현장에 파송 받은 선교사는 아니지만 뒤에서 협력하여 선교사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로써,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면 순종하고 그 길을 갈 것입니다."고 앞으로의 비전을 밝혔다.
▲변도우 장로는 "죽음의 고비도 많이 넘겼고, 기업도 이 만큼 축복을 받았는데, 남은 인생은 현장에 파송 받은 선교사는 아니지만 뒤에서 협력하여 선교사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로써,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면 순종하고 그 길을 갈 것이다."고 앞으로의 비전을 밝혔다.

-영도문화원을 소개해 주신다면?

영도로 들어오는 순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보고 위에 훈훈한 이웃이 더해져, 쉼이 있고 놀이가 있고 참 회복이 샘솟아 아름다운 추억과 기대가 쌓이도록 영도의 문화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영도의 혼인 문화와 예술 즉, 우리네 땅과 우리네 삶이 다름 아닌 평생소원의 BUCKET LIST가 되기까지 함께 꿈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문화원사업으로는 역사문화탐방, 절영도스토리투어 등과 지역민들에게 문화와 예술로서 보다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구민의 일체감과 애향심 고취를 위해서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강좌로는 수채화반, 유화반, 타로반, 팝아트, 하모니카, 우크렐라, 장구, 난타, 민요 등이 있습니다.

또 도시재생사업으로 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예술마을, 봉산마을과 문화도시조성사업으로 문화도시 예비사업 및 문화적 도시재생 등이 있습니다.

특히 공모사업으로 어르신과 청년협력 프로젝트와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 지원사업과 예술인 일자리 파견지원사업 등이 있으며 또 영도다리의 추억과 낭만의 현장을 수놓을 영도다리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나의 시 나의 삶의 시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시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시집을 내게 된 배경이라면?

발간한 목적은 내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고요. 그리고 나 자신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이때가 좋지 않겠나 싶어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되기까지 문화 활동을 하긴 하지만 시인으로 등단 된지도 꽤 오래됐지만 거의 활동을 못하다가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년에 문학지를 하나 낸 것도 이것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낸 겁니다. 근데 이 책을 받아본 분들이 믿지 않은 사람들한테 전도지처럼 선물로 주면 새신자전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는 얘기들을 들었을 만큼, 비기독인들이 읽어도 거부감이 없을 시집으로 보여집니다.”

-장로님께서는 동삼교회를 섬기시다가 은퇴하셨으며 교회 간증도 다니십니다. 시인으로서, 섹소폰연주가로서, 부산장로성가단 단원으로서, 한국국제기드온협회원으로서, 특히 선교사님들의 안식년 쉼터인 게스트하우스 마련에 심혈을 쏟아 오셨습니다.

제가 많이 아팠는데 아프기 전에 (IMF 오기전) 굉장히 어려웠었습니다. 저 혼자 사장이고 회사 일을 다 했으니까, 그러면서 신용불량자가 됐고 아내는 초등학교 선생이었는데 결혼하면서 그만 뒀습니다. 예전부터 선교사님과 관계가 밀접했는데 제가 어려움 중에서도 선교사님의 애환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분들이 안식년이 돌아와서 집에서 한 달, 두 달 머물면 반기지 않는 거예요. 이 분들을 보면서 돈 한 푼 없고 맨날 마이너스 통장뿐인 주제에 마땅히 안식할 데가 없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미션하우스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게스트하우스나 미션하우스들이 대게 교회 안에 있지만 그러나 부담과 불편함이 있지 않겠어요. 선교사님들이 자유롭게 얼마든지 지낼 수 있는 미션하우스를 세운다는 생각만 해도 내 마음속에 엄청난 희열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통해서 내 삶의 모토가 됐어요.

하나님께서 제게 대만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일은 신묘막측 합니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회사가 위기와 기회를 맞았습니다. 불법주파수를 사용한다고 실사를 받았는데 그러면서 국산화 개발을 서둘러 현재는 80% 자체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려울 때 교회 교육관을 짓는데, 돈이 없던 제가 차용증 두 장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3년 후에 갚겠다고 작정헌금을 했습니다. 한 장은 보관용 한 장은 교회 제출용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한 것은 꿈을 꾸니까 이뤄지는 거예요.

제가 살던 집이 형편이 좋아져서 아파트를 세 줬는데 세든 사람이 집을 엉망으로 사용하고 있어 수리를 하고 세를 주자고 생각을 했는데 두 달 만에 세준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꿈 꾼대로 선교관 운영으로 맘을 먹은 것이 1호관 탄생입니다.

2호관은, 1년도 안된 새신자가 울산에 아파트 청약으로 전세를 내 놓은 집이 있는데 매입하면 잘 주겠다고 해 6개월 동안 고민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밀리다시피 사게 되었는데 사고 보니 선교관이 되었습니다. 교회와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로 OM선교사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맘이 편해서인지 OM측에서는 자기 선교관이라고 자랑할 정도입니다.

선교관 마련은 제 꿈이기도 했으며 앞으로 비전이기도 합니다. 미션하우스 건립을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노후에는 미션하우스 관리를 하면서 선교사님들이 자기 집처럼 왔다가 편안하게 쉬고 선교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나로서는 간접적인 선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선물이요. 여러 분야에서 선한영향력을 나타내기까지 재정지원 처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지난 2003년 개인 제조업으로 등록된 제이코(JEICO)는 설립 17년을 맞았습니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인지요?

지난 2003년 개인 제조업으로 등록된 ()제이코는 보다 빠른 서비스로 모두에게 만족을 주겠다는 SPEEDY와 보다 스마트하고 멋진 제품으로 보답하겠다는 SMART, 그리고 항상 밝고 웃는 모습으로 응대하겠다는 SMILE3대 경영이념을 지닌 산업용 무선 리모컨 전문제조업체로써, 천장 및 타워 크레인, 호이스트, 윈치, 엘리베이터 등의 무선 원격 제어분야 연구와 생산에 특화된 전문기술 업체입니다.

꾸준한 연구와 앞서가는 기술력으로 다양한 시리즈와 신제품을 내놓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이를 인정, 벤처기업으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업부설연구소도 정식 등록이 되어 심화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장의 편의를 위한 원거리 조종에서부터 안전상 무선 조종이 필요한 산업용 크레인과 철강 발전소를 비롯한 각종 산업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방폭 지역에서 필요한 무선 리모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본질 안전 방폭 제품으로의 인증획득은 당사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선 리모컨을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부터 핵심 RF 기술까지 모두 자체 기술로 개발된 저희의 제품은 현장에서 응답성이 좋고 불량률이 낮은 제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산업용 무선제어 분야에서 세계 어떤 기업과 기술 경쟁을 해도,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부심과 소신을 갖고, 이 분야에 몸담아 왔습니다. 앞으로도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21세기 산업용 무선 제어 관련 산업 분야에 선두 주자의 길을 걸어 나갈 것입니다.”

(주)제이코 생산제품
▲(주)제이코 생산제품(산업용 각종 리모컨)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 94-1(J빌딩) ()제이코 본사 사옥을 마련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시는지요?

서면에 3층 건물에서 5개 창고를 사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100평이 있어야겠습니다. 최소한 4층은 있어야겠습니다. 기도를 드렸죠.

1년에 일곱, 여덟 번은 건물을 보러 다녔는데 그 와중에 터키에서 바이어가 방문을 했는데 민망해서 혼났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공매로 나온 건물 100평을 5개 업체 가운데 결격사유가 전혀 없는 저희 회사가 입찰을 받고 현재의 사옥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건물 값이 3배나 오른 것을 감안하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었죠.

저희 제품이 경기를 많이 타는데 금번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으나, 신기하게도 작년보다 매출이 늘어났습니다. 저희들의 목표는 고객들을 위해서 A/S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 아래, 연구개발에 심혈을 쏟고 있습니다. 내실을 충실히 다지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기에 코로나19는 내실을 더욱 다지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동삼교회 장로로서, 은퇴하기까지, 장로의 본질은 무엇이며 교회 내에서 장로의 헌신은 무엇이라고 정의를 하시는지요?

동삼교회는 나를 나아주신 엄마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다른 지역이 아닌 한 동삼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교회와 자신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는 자기 몸을 불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는 것이 장로가 하는 일이 아닌가요? 장로는 목사에게 있어, 교인들에게 있어,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돼야 교회는 화평과 함께 지역 사회에 빛과 소금, 선한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비전을 꿈꾸는 것이 있으시다면?

"미국에 있는 큰아들로부터 기도제목이 왔는데 장문의 기도문 속에 하나님 중심으로 가정을 이끌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자세를 다짐하는 글을 보며 이제 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특별한 꿈은 없고 어릴 때 생각하면 차 사고에서 죽을 수도 있었고, 어릴 때 물속에 빠졌을 때도 살아나왔고, 10년 전에 영도에 똥섬이라는 곳에 수영하다가 죽을 수도 있었고, 어떤 면으로 생각하면 제2의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기업도 키워주셨고 내가 선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선교사 뒤에 후원을 하게 됐습니다.

큰 저수지에 발전소가 있고 그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기가 온 사방에 불이 켜지듯이, 불이 켜지는 것은 저수지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선교사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로써, 남아있다면 그 길을 갈 것이고 하나님의 보내주신다면 순종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