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노회 제80회 정기노회, 코로나 따른 간소화 거행
부산동노회 제80회 정기노회, 코로나 따른 간소화 거행
  • 교회복음신문/한국기독타임즈
  • 승인 2020.04.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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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코로나 예방수칙 이행 모범사례 제시
목사총대, 김태영⦁전재전⦁하남수⦁윤동일⦁이동아⦁남기룡⦁이상붕⦁박무종
장로총대, 임화발⦁박한규⦁손영수⦁정강완⦁이충길⦁강형원⦁신관우⦁김세원
지난 4월21일(화) 오전9시 가야교회당(박남규 목사)에서 개최된 예장통합 부산동노회 제80회기 정기노회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4월21일(화) 오전9시 가야교회당(박남규 목사)에서 개최된 예장통합 부산동노회 제80회기 정기노회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예장통합 부산동노회(노회장 전재전 목사)가 제80회 정기노회를 개최하면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에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본지가 부산진구청 담당자에게 의뢰한 결과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가 진행되는 상황서 사전에 모임의 성격 등을 제보 받지 못했지만 후일 제보를 받게 됐다"제보에 따르면 280여명이 운집한 모임인데, 예방수칙이 잘 지켜졌고, 손소독제부터 특히 자리배정 등 준비가 모법적으로 잘 진행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노회장 전재전 목사(청강교회)의 개회예배 사회
▲노회장 전재전 목사(청강교회)의 개회예배 사회

부산동노회는 제80회 정기노회(봄노회) 소집을 앞두고 정기노회는 간소하게 진행한다. 밤늦게까지 진행되던 회의를 오전에 마무리한다. 개회예배 찬양대 찬양과 성찬식은 생략한다. 노회당일 점심식사는 식대로 대신한다. 각부 보고는 서면보고한다. 목사안수식은 오후2시 직계가족 및 최소인원만 초청한다. 코로나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킨다. 국내외 내빈 방문 및 인사는 받지 않는다. 등 정기노회를 통해 진행되었던 순서 축소 및 생략, 예방수칙에 적극 따라 줄 것을 당부하는 협조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또 부산동노회는 개회예배 시 드린 헌금 전액을 코로나19로 인해 형편이 어려운 미자립 및 개척교회 지원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21() 오전9시 가야교회당(박남규 목사)에서 개최된 부산동노회 제80회기 정기노회의 백미는 총회 총대선거로써, 목사총대로 당연직인 김태영목사(백양로교회), 전재전 목사(청강교회), 하남수 목사(실로암교회)를 비롯 , 윤동일 목사(안락교회), 이동아 목사(전도), 남기룡 목사(서면중앙교회), 이상붕 목사(창대교회), 박무종 목사(성광교회) 등이며, 장로총대로는 당연직인 회계 임화발 장로(평화교회)를 비롯, 박한규 장로(학장제일교회), 손영수 장로(모라교회), 정강완 장로(학장제일교회), 이충길 장로(초읍교회), 강형원 장로(감전교회), 신관우 장로(백양로교회), 김세원 장로(안락교회) 등이 총대들의 지지를 받고 선출됐다.

총회장 김태영 목사(백양로교회)의 설교
▲총회장 김태영 목사(백양로교회)의 설교

개회예배는 노회장 전재전 목사(청강교회)의 인도로 기도에 장로부노회장 이대희 장로(양정중앙교회), 성경봉독(느헤미야 111~6)에 회록서기 안효찬 목사(학장제일교회), 설교에 총회장 김태영 목사(백양로교회) 등이 순서를 맡아 섬겼다.

전노회장 최성광 목사(주님의교회)의 인도로 "고 박의영목사와 추병호선교사 유가족과 선교지를 위한특별기도와 노회원 전원이 일어서서 드린 나라와 민족을 위해 - 코로나19퇴치, 경제회복, 정치안정, 총회와 노회를 위해 - 영적인 분별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회를 위한 합심기도는 뜨겁고 간절했다.

전노회장 김정광 목사(초읍교회 원로목사)의 축도에 이어 서기 하남수 목사(실로암교회)의 인사 및 근속기념패증정으로 은퇴목사 및 전노회장 및 전부노회장 인사 30년 근속목사기념패 증정-새길교회 김현주 원로목사 / 서면중앙교회 남기룡 목사 / 새날교회 안하원 목사 가야교회 담임목사 및 당회원 인사 등으로 이어졌다.

목사안수식서 설교하는 김기동 목사
▲목사안수식서 설교하는 김기동 목사

이어진 회무처리는 절차보고/서기, -저시 및 사찰위원선정/노회장, -임원회 특별 청원의 건, -총회총대 투표(선거관리위원회), 안건헌의/서기 등에 이어 각부 보고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노회 회계보고, -시찰회 보고, -임원회 보고/서기, -상비위원회 보고, -특별위원회 보고, -노회 소속기관 보고, -기타 노회 관련기관 보고 등도 서면보고로 통과되면서 오전9시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돼 왔던 노회 회기가 오전에 끝나는 모습을 보였다.

목사안수식 후 순서자와 목사안수를 받은 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가졌다.
▲목사안수식 후 순서자와 목사안수를 받은 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가졌다.

이날, 오후2시에 거행된 목사 안수식에는 순서자와 가족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장신대학교 신대원 출신의 안성준(동아대 졸, 행복을주는교회), 김성훈(계명대 졸, 빌라델비아교회), 황사라(학점은행대 졸, 백양로교회), 정우탁(대신대 졸, 감전교회), 김현철(고려사이버대 졸, 창대교회), 이선영(이화여대 졸, 안락교회), 김왕범(중앙대 졸, 안락교회), 김기환(부산장신대 졸, 예일교회), 조일래(한동대 졸, 창대교회) 9명이 목사안수를 받고 목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취재/김다솜 기자cgnnews@hanmail.net  사진/박성현 목사(부산동부교회)

 

다음은 총회장 김태영 목사의 무명 용사들이란 제목의 설교 일부를 발췌했다.


지금 정기노회도 규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재난으로 인해서 연기나 축소하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집단 감염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교회마다 영상예배를 드리든지 아니면 현장예배를 드리더라도 국가의 어떤 방역 지침을 준수해야한다. 교회가 자발적인 참여를 하게끔 해야지 정부가 강제성을 띄거나 공권력이나 행정권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속히 코로나19를 종식시켜 주셔서 모든 국민과 교회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지금은 예배조차 정상적으로 못 드리기 때문에 어려운 시대에 등록할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새 신자를 등록받지 못하는 참 희한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교회가 과거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52 만에 무너져있던 예루살렘 성을 건축했다. 문제는 예루살렘 안에서 성전도 있고 성벽도 준수 했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느헤미야 74절에 보면 당시 예루살렘 성읍은 광대하였으나 주변에는 적고 가옥이 건축되지 아니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은 전락한 도시로 황무한 도시로 크기는 큰데 인구가 별로 살지 않는 텅 빈 도시였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정착이라고 하는 행정적인 핵심 조치를 강행하게 된다. 오늘 읽은 111절을 보면 누구를 제일먼저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했나 백성이 지도자들이라고 했다. 느헤미야가 생각해보았겠죠. 누가 총대를 메고 이 텅 빈 도시에 와서 살 것 인가? 백성이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하라고 명령을 했다. 지도자들이 편안한 자리를 내려놓고 불편한 자리를 무릅쓰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도 필요한 것이다. 느헤미야는 공직자 지도자들이 1차로 이주할 것을 명했다. 그렇다. 우리가 전도를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교회 건축을 하든지 행사를 하든지 교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꼭 편안한 길 대접받는 길 욕먹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못된다. 희생하고 위협받는 일도 있고 손해를 보는 일도 있고 욕도 먹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눈치를 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루살렘 성을 비워두어서는 안 된다. 성전은 예루살렘을 텅 비게 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들부터 이주할 것을 명령했다.

두 번째로 보면 제비를 뽑아서 그 지파의 10분의 1을 이주하게 했다라고 했다. 제비를 뽑을 만큼 사람을 이주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좀 강제성을 띤 구속력이 있는 제비를 뽑았다. 라는 사실이다. 각 지파를 제비 뽑아서 십분의 일 소위 십일조 백성을 이주시켰다. 구약시대에는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할 때에는 제비를 뽑았다. 사람은 제비를 뽑으나 일의 작전은 여호와께 있다고 말씀했는데 지금은 뭐 교회 중직자를 뽑는데 제비를 뽑지는 않는다. 한국교회는 제비 뽑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본다. 제비를 뽑힌 사람들이 집단으로 못 남고, 불편하고, 반발할 수 있다. 왜 우리가 가야되느냐? 왜 우리가 원치 않는 곳에 낯선 곳에 가야되느냐?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느헤미야의 명령 뿐 아니라, 제비 뽑힌 사람이 가족이 순종하여 이주하게 된다. 교회공동체가 잘 새겨들으시기 바란다. 제비를 뽑는 것도 뽑히는 것도 원하는 일이 아니지만 온 가족이 절차에 따라서 순종을 했다. 우리가 절차에 따라 어떤 직이 주워 지면 수긍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데 모임자체를 지금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1절과 2절 사이를 보면 행간이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으리라고 본다.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지도자들이 그리고 백성들이 이주하는 것을 보고 그제 서야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고 자원하는 사람들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제 가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다 이주를 하게 된다. 그 때 살고 있었던 사람들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었다고 했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이 함께 하리라. 축복을 해주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이주정책을 펼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예루살렘을 번성하게 하고 예루살렘 안에 사람이 많이 살게 하려는 그런 뜻은 아니었음을 성경을 보면 알게 된다.(중략)

교회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 교회 밖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 백성의 십일조, 지파의 십일조,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일을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위해서 이주정책을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배경으로 11장과 12장을 묵상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시켰던 사람들을 알게 된다. 116절에 이렇게 기록 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468명이니 다 용사이였느니라. 여기서 용사는 히브리어로 "하일 "로 그 뜻은 "장군⦁영웅"이란 뜻이다. 468명 유다지파의 베레스 자손이 다 용사였다고 했다. 지도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무슨 지파의 자손이 몇 명이였다. 이렇게 기록이 돼있다.(중략)

그들의 수고와 헌신과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한 희생으로 예루살렘이 부흥하고 또 예루살렘 성전을 섬겼으며,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한 나라의 발전과 신앙공동체의 부흥에 헌신했던 사람의 숫자를 기록해서 후손에게 너희들 조상 중에 자랑스러운 영웅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국가든지 회사든지 교회든지 가정이든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만큼 왔다고 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천만 성도를 이루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희생하면서 누군가가 피땀을 바쳐서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얼마나 교회 부흥에 헌신 했는지를 돌아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이 매우 지루해 보이지만 선인들의 역사에는 잊을 수 없는 무명의 용사들 황무지와 같은 곳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갔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용사라는 이 단어 속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135년을 맞이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선교대국을 이루었다. 온갖 전염병이 창궐되고, 이 땅에 문맹자들이 가난한 사람이 그때도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데, 미국에서도 1%안에 속했던 사람들 그 당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안락한 삶을 버리고 그들은 이곳에 와서 목숨을 바쳐 하나님의 선교지를 위해 헌신을 했다. 또한 우리 신앙의 선배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저는 한국교회 오늘의 부흥이 있기까지 숨은 공로자가 있다고 한다면 소위 무인가신학교를 나온 야간 성경학교를 나온 목사님 여전도사님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시골교회, 벽지교회, 섬교회, 2~30명 모이는 작은 교회, 누가 가서 섬기겠는가? 하나님께 몸부림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다. 요즘 때가 되면 통장으로 돈이 짝짝 들어오고 우리가 좋은 승용차,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가난과 배고픔에 살았다. 온 가족이 온갖 잡곡과 보리쌀 섞여있는 것을 주식으로 하고, 사택 산 귀퉁이에 풀밭을 가꾸어 자급자족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생활비를 충당했다. 오늘날 함부로 무인가신학교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1000만 교인과 선교대국을 이룬 사람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생을 헌신했던 무명 전도사님들 무명의 목사님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비록 담임 목사들만이 이룬 업적은 아니다. 부목사님들의 헌신과 수고, 장로님들의 헌신 또한 대단했다. 교회를 위해 뭉치 돈 헌금을 아낌없이 드렸다. 자신들의 노후의 안정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그들은 헌신을 해왔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무명의 영웅들이 한국교회의 궁속에 숨어 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떠나간 이후에 주님의 이름이 남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앞에서 용사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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