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비판(김근주 목사)에 대한 저자의 답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비판(김근주 목사)에 대한 저자의 답변
  • 한국기독타임즈/교회복음신문
  • 승인 2020.02.26 11: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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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그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자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어떤 직분을 갖고 있든 그는 무신론자이며, 따라서 당연히 그는 교회 ‘밖’에 있다.
박남훈 목사 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표지
박남훈 목사 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표지

1.<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에 대해 김근주 목사가 비판한 글을 접하다.

내가 쓴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세컨리폼)에 대해 김근주 목사가 뉴스앤조이에서 비판을 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었는데 지인이 알려주었다. 네이버에 올려진 시각(2020.2.14.)에서 며칠 지난 시간이었다. 무명 저자가 쓴 책을 언급해준 것, 약간 고맙기는 했지만, 그건 일순간의 생각이었다. ‘뉴스앤조이가 어떤 매체인가. 좌파 매체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김근주 목사는 내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저서 속에서, 그의 저서 <복음의 공공성>을 손봉호 교수의 이데올로기 지향성과 관련하여 비판한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김근주 목사가 내 책에 대해 뭐라고 언급했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뻔하지 않는가. 진영 논리로 날카롭게 간 칼날로 칼질을 하지 않았겠는가.

사나흘인가 일부러 시간을 죽인 후, 그리고 몇 차례 길게 심호흡을 한 후에 그의 글을 읽어내려갔다. 그가 휘두르는 칼날이 심장 주변을 들쑤시고 들어왔지만 인내심을 갖고서 읽었다. ‘논리의 비약’, ‘개념의 혼동’, ‘자료의 왜곡등등의 표현들이 보였다. ‘나쁜 책이라는 표현도 보였다. ‘반면교사 역할을 하기에는 좋은 책이라는 빈정거림도 들렸다. ‘불온이라는 단어도 보였다. 최근 손봉호 교수를 공격하는 메시지들이 많이 나타난 시점을 나름대로 추론하면서 가짜 뉴스 공장처럼 조직화된’, ‘특정한 조직의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를 추정해내는 놀라운(?) 음모론적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료등등의 언급에서는 내가 학위논문 심사를 받고 있는 것인가, 라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굳이 한 마디만 하자면, 글쓰기는 많은 자료들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지, 모든 자료들을 다 언급하고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해석하고 선택해서 논리적인 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왜 손 교수의 저작들을 다 읽고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닦달하는 것은 코메디 소재도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의 글을 읽은 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이 책을 쓸 때부터 비판을 감수한 것이니 그냥 지나쳐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이내 밀쳐버렸다.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출간했으니 이제 좀 쉬자는 생각이 당초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 책을 출간한 것으로 끝이 아니고,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유튜브로 알리고, 앞으로 기독교좌파윤리이데올로기’, 그리고 좌파의 프레임전략과 공격에 대한 담론을, 그리고 기독변증과문화비평이라는 문화담론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유튜브 방송을 개설하고, 일단 혼자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이건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쓸 때부터 생각한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기독변증과 문화비평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인데, 내 생각보다는 그 시기가 일찍 도래한 셈이다.

이 글도 기독변증과문화비평의 일환이다.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책 끝부분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기독변증과 문화비평 정책선언에 나와 있듯이, 내 자신을 포함해서 기독교 인격신의 부름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그러나 너무나 부족한 기독신자들, 그리고 제도권 교회 안에 있는 무신론자들, 그리고 제도권 교회 밖에 있는 무신론자들, 그 모두가 내가 생각해온 기독변증과문화비평의 대상이 아닌가.

 

2.<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이 책은 변증적인 책이다. 단순히 손봉호 교수를 비판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주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지, 손봉호 교수가 아니다. 그런데 김근주 목사는 기독 변증에 대해 이해가 없는 것인지,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 변증적인 관점에서 내 책을 평가하고 비판하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히 정파적 이념적 관점에서 손봉호 교수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다. 손봉호 교수는 좌파다, 장로가 그러면 되냐, 이런 단세포적 논리로 손봉호 교수를 다루고 있지 않다. 이 책은 변증적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엮임했으며 유명한 사회활동가이며 윤리 이론가인 손봉호 교수의 저술들을 필자 나름대로 치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손봉호 교수의 글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손 교수는 기독교윤리가 아니라 윤리 이데올로기의 소유자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만약 저자의 이 해석이 맞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게 된다.

왜냐하면 손 교수가 기독교윤리가 아니라면, 특정 이념을 담보로 하는 윤리 이데올로기를 지향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그가 이데올로기스트라면, 손교수가 수십년 동안 주도해온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은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이 아니라, 특정 윤리 이데올로기에 의한 기독교 해체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손 교수의 입장을 지지하고 옹호해오던 사람들은 더 큰 곤혹스러움에 처하게 된다. 이 책 저자의 논리를 부정하자면, 이 책의 변증적인 논리전개 과정을 부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마태복음 2323-24절에 대한 손교수의 해석을 비판하고 있는 저자의 논리를 부정하려면, 이 성경 부분에 대해 더 정확한 해석으로 맞서야 하는데, 내가 생각해봐도 윤리이데올로기 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마23:23-24의 손 교수 해석을 분석하면서, 루이 알튀세르라는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이데올로기 전문가의 이론에 입각하여, 손 교수가 장로이자 협동설교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격적인 기독교 신에 의해 부름을 받은 사명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부름을 받고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사명자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정 윤리 이데올로기에 부름을 받고 복종하는 사람의 주장이나 활동이 결코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이 될 수 없다. 물론 손 교수가 사회활동가로서 한국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손 교수는 사회윤리운동을 하신 분이지 기독교 윤리실천 운동을 하신 분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윤리이데올로기에 의한 손 교수의 윤리운동은 기독교 윤리의 관점으로 좁혀서 보면, 기껏해야 주로 한국교회 비판만을 사명으로 여기는 이상한 윤리 운동이 된다. 예를 들어 조국 사태에 대해 기윤실은 대중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그 어떤 성명서도 발표하지 않았다. 좌파 쪽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늘 침묵하고 외면하다가 한국교회 쪽에 조그만 사건만 터져도 목소리를 높여 성명을 발표하는 곳이 기윤실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한용운 <님의 침묵>의 시들을 좋아하지만, 기윤실의 그런 침묵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김근주 목사는 이 책에서 내가 마23:23-24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손봉호 교수가 기독교윤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한 논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기독교윤리는 윤리와 교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손 교수에게는 교리가 없다, 는 나의 설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사실 이 책의 3손봉호 교수의 마태복음 23:23-24 해석 분석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김근주 목사는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일까. 어떤 책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적어도 건성으로라도 1독을 해야 하는데, 대충 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가져가서 평가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나에게 가했던 비판, ‘맥락을 제거하고 왜곡하기 일쑤라는 표현이 부메랑으로 김 목사 본인에게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내 책의 3장을 읽고 거기에 대해 일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사람은 내 책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김근주 목사가 이 3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오독(誤讀)일까, 아니면 자신의 이념에 도취된 바리새적 나르시시즘일까. 나는 이 질문을 김근주 목사에게만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독자들도 같이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필자(저자)소개 / 박남훈⦁부산대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문학평론가⦁고려신학대학원 졸업/現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주안교회 담임목사⦁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창립동인/도서출판 '세컨리폼' 대표⦁저서/문학평론집 '인간, 그 타락한 위대함'(열음사),         문화비평집 '기독교와 문화비평'(세종출판사)⦁기독변증과문화비평집 '여호야김 왕의 면도칼'(세컨리폼) ⦁이메일:pnahoo@hanmail.net
필자(저자)소개 / 박남훈
⦁부산대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문학평론가 ⦁고려신학대학원 졸업/現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주안교회 담임목사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창립동인/도서출판 '세컨리폼' 대표 ⦁저서/문학평론집 '인간, 그 타락한 위대함'(열음사), 문화비평집 '기독교와 문화비평'(세종출판사) ⦁기독변증과문화비평집 '여호야김 왕의 면도칼'(세컨리폼)  ⦁이메일:pnahoo@hanmail.net

3.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그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어떤 직분을 갖고 있든 그는 무신론자이며 이데올로기스트이며, 따라서 당연히 그는 교회 에 있다.

나는 이 책의 서론 부분에서 손교수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변증적 논리전개 과정을 통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던진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했다. 이 질문들과 답변은 그동안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기독교 윤리의 아이콘으로 숭배되어 왔던 손 교수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우상파괴적 의미를 갖는다. 저자가 심각하게 진지하게 던진 일곱 가지 질문들과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책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논증하고 변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결론, 즉 답변들 중 맨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만 이 지면에 소개한다.

<질문7>-‘개신교 역사상이나 한국교회는 망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한국교회의 원로이자 어른쓴소리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참혹한 내용이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그는 한국교회의 아군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질문7에 대한 답변>-그는 한국교회의 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으로 개교회(個敎會)를 초월하는 영적 공동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한 분인 것처럼 거룩한 공교회는 하나뿐이다. 성경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때 특히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연합이다. 그 연합은 모래알이 모여 무더기가 된 것 같은 기계적(mechanic)인 집합이 아니라 동물의 몸이나 건물처럼 유기적(organic)인 조직이다.”(손봉호,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108-109)라고 손 교수 자신이 말한 맥락에서 볼 때 그는 한국교회의 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삭제하고 이데올로기화된 윤리, 즉 마르크시즘으로 한국교회를 프레임 공격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군은 절대로 그렇게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이데올로기화된 윤리와 프레임으로 장치된 트로이 목마를 한국교회의 왼편 한 높다란 언덕 위에 세웠다. 그 트로이 목마에서는 지금 종북, 사회주의 혁명, 한국교회 해체, 한미동맹 파괴, 동성애 찬성 등등의 담론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는 손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스트라는 말이다. 앞서 언급되었지만 장로이자 협동설교자이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윤리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인격신에 의해 부름을 받고 그 말씀에 복무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근주 목사는 손 교수보다 훨씬 더 이데올로기스트 쪽으로 가 있는 분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나는 갖고 있다. 이 점을 내 책 제5장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건 지금 이 지적만 갖고서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5장을 읽고, 혹은 김근주 목사의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책을 읽어야 어떤 판단이 서게 될 것이다. 김근주 목사는 기독교 인격신에 의해 부름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 복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그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던지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글 마지막 부분에서 김근주 목사가 스스로 이에 대해 답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하며, 마치 딱새의 둥지에서 먼저 부화해 다른 알을 밀어내버리는 뻐꾸기 새끼처럼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들이 가진 것이 진정 신앙인가? 이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진정 교회인가?

김 목사가 위의 글에서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내가 내 책에서 기독교 인격신의 부름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그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사람은 교회 에 있지 않고 교회 에 있다는 뜻으로 말한 내용을 자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이여, 같이 생각해보시라, 기독교회는 기독교 인격신의 부름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같은 신앙고백으로 모인 곳이지, 특정 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고 그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항상 한국교회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백과 선포를 하는 곳이 아니지 않는가.

, , 아까, ‘불온’, ‘조직등의 말을 김 목사가 했는데,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불온한 조직의 명령이 아니라, 이 책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성령의 감동임을 밝힌다. 내 나름대로 기독교 인격신의 부름 속에서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데 감히 이데올로기의 논리로 이런 노력을 불온운운 하는 김 목사의 태도가 나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깝고도 안쓰럽게 여겨질 뿐이다. 그리고 김근주 목사의 비판 기사의 부제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세컨리폼)는 어떤 책인가복음주의 개혁 진영 향한 왜곡 정보, 반복 재생산되어 유통으로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나는 김근주 목사와 같은 입장을 복음주의 개혁 진영이라고 부른 편집자에게 묻고 싶다. 복음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만약 김근주 목사가 이데올로기스트라면, 이데올로기의 부름을 받은 사명자라면, 과연 그를 복음주의 개혁 진영으로 부를 수 있는가. ‘복음주의 개악 진영이라고 불러야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예수를 삭제하고 윤리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의 사명을 받고 그것에 복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발 복음이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담론에서 삭제하는 것이 나중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조금이나마 이로운 일이 될 것임을 충고하면서, 내 생애 글쓰기 중에서 가장 불편했던 글을 마친다.

<필자(저자)소개 / 박남훈

부산대영문학과 졸업/문학박사/문학평론가

고려신학대학원 졸업/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주안교회 담임목사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창립동인/도서출판 <세컨리폼> 대표

저서/문학평론집 <인간, 그 타락한 위대함>(열음사),

문화비평집 <기독교와 문화비평>(세종출판사)

기독변증과문화비평집 <여호야김 왕의 면도칼>(세컨리폼)

이메일:pnah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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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sxntm 2021-01-15 13:46:16
지랄 쌈을 처먹는소리 하고 자빠졌네 씨뱅아
손봉호는 자선단체로 선량한 시민들 뽀찌 뜯으며 사는 좆밥늙은이다.
하아..저런게 빨리 빵에 들어와서 함 따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