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구가 만난 사람/ 서예의 길 46년 '병암 여운부 장로' 편
■김길구가 만난 사람/ 서예의 길 46년 '병암 여운부 장로' 편
  • 한국기독타임즈/교회복음신문
  • 승인 2020.01.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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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묵객(騷人墨客) 병암 여운부 장로
묵향 그윽한 작업실에 문방사우가 가지런히...
서예의 길 46년을 걸어 온 병암 여운부 장로(부산진교회 은퇴장로)
▲서예의 길 46년을 걸어 온 병암 여운부 장로(부산진교회 은퇴장로)

신년에 어울리는 인터뷰를 생각해 보니 병암 여운부(72) 선생이 떠올랐다. 몇 차례의 고사 끝에 허락을 받아 그의 작업실이 있는 용호동 집을 찾아갔다. 묵향 그윽한 방 한편에는 문방사우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그의 성품을 말해 준다.

서예란 한자문화권인 한, , 일에만 있는 독특한 예술 장르로 영어로는 calligraphy이다. 요즘 유행하는 글자를 활용한 독창적인 도안인 캘리그라피와의 구분을 위해 oriental calligraphy라고도 한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

가슴엔 문자향과 서권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문자, 동양 삼국은 문자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서예는 붓끝에서 이어지는 점과 획의 균형과 여백으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문자예술이다. 삼국의 차이는 뭘까? “우선 명칭부터 달라요. 중국은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 한국은 서예(書藝)라고 하는데 명칭이 말해주듯 같은 듯 다른 차이가 있다 고 했다.

한자의 서체는 시대에 따라 선택된 미감인 오체(전서, 예서, 행서, 해서, 초서)가 있는데 중국이 전통을 법처럼 중시한다면, 일본은 가나문자를 활용 독특한 가나서예를 만들었고, 한국은 문장과 문인화의 의미까지 포함된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는 예술로, 서여기인(書如其人) 즉 글씨가 곧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득 추사체를 창조한 대가 완당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글 잘 쓰는 비결로 가슴 속에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서예와 한학 익혀

검정교육회 입사 평생 글과 인연

지금도 하루 2시간씩 글쓰기를 쉬지 않는다는 그는 호남의 곡창인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농촌 마을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 여씨 문중의 집성촌 마을로 고조부께서 진사 벼슬을 하셔서 진사댁으로 불렸다며 내게 가로 80, 세로 50가량의 어인(御印)이 선명한 135여 년도 훨씬 넘었을 합격증을 보여 주었다. 합격증에는 13명 중 차석이라고 글귀가 또렷했다. 그런 집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서예가 천직이 되었다. “어머님의 권유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웃 마을 서당에 가서 서예와 한학을 배웠다는 그는 서당 뒤뜰의 대나무 언덕과 솔밭의 솔바람을 맞으며 고전과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명문 강경상고를 나와 국가인증기관인 대한글씨검정교육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배운 서예와 한학 때문이었다.

병암 여운부 장로의 서예작품
▲병암 여운부 장로의 서예작품
爲國祈禱(위국기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작품
爲國祈禱(위국기도),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작품

재능 살려 복음전도사로

글 쓰는 동안 말씀에 집중

“197411월 부산에 정착 서예학원을 시작으로 일생의 사명인 서예와 후학 양성에 힘썼지요. 부산진교회에 출석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된 1980년도부터 재능을 살려 전통예술인 서예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복음전도 사역이었다. 그 사역은 10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는 199311한국기독서예선교원을 개원하여 본격적인 서예 선교사역을 전개하였다.

하는 일이 주로 전국에 있는 서예인들과 서예학원장에게 성경쓰기운동 참여를 권면하고, 서예 교육시간에 성경 말씀을 쓰도록 장려하는 일이었어요.”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주님께서는 순간순간 너에게 글 잘 쓰는 은사를 주었는데 그 재능을 활용해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강권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당시 서예는 유불선의 색깔이 짙은 우리의 전통문화였기에 주로 쓰는 글감들이 논어, 반야신경, 도덕경 같은 데를 활용하였는데, 그는 이런 풍토에 과감히 도전한 것이다. “그때 저는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전국에 있는 서예인에게 쓰도록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우리의 토속적인 정서와 문화에 젖어있는 서예계에 기독교문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영적도구로서의 서예

신앙생활에서 서예는 유용한 영적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전통적인 믿음의 선배들의 수련방식인 렉티오 디비나’(거룩한 독서)4단계, 말씀을 읽고-묵상하고-기도하고-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상의 단계로 본다고 하더라도 성경 말씀을 적용하는 서예는 영적 자양분이 풍부한 영적도구이다. 2시간의 글쓰기 작업을 위하여 1시간 반가량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벼루에 먹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을 온전히 잡념을 버리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병암 여운부 장로의 書畵作品(서화작품)
▲병암 여운부 장로의 書畵作品(서화작품)

대한민국기독서예대전 개최

기독교서예문화 대중화에 앞장

복음전도 사역이 10여 년이 지나자 차즘 성과를 내기 시작하여 서예인들의 책상 위에 성경책이 놓이기 시작한 거예요. 성경을 소재로 한 글쓰기가 일반화되자 개최한 것이 19959월에 개최한 제1대한민국기독서예대전입니다. 한국기독서예선교원 주관으로 부산에서 첫 대전을 열고, 10년간 전국으로 순방했는데, 5~7일 동안 부산문화회관을 비롯하여 대전시민회관 전시실, 대구시민회관 전시실, 서울역문화관 등을 순회 전시하였다당시 서예를 통한 복음전도사역의 비전을 말할 때 용기와 기도로 격려해 준 분이 교회담임인 박성원 목사(현,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였다.

기억에 남는 일은? “200410월 한국기독서예선교원 10년사를 발행하여 부산시민회관에서 선교보고와 함께 전국의 기독서예인들과 말씀전시회를 가진것과 묵해 김용옥선생과 함께 성경서예작품전을 개최하여 중국교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예선교를 위한 소식지 두루마리발간과 서예인들에게 글감을 제공하기 위하여 한문성경보감을 발행하여 전국 교도소(청송, 진해, 수원교도소) 등에 보내고, 서예를 배우기 원하는 수감자들에게는 책을 무료로 보내주었다.

학구열에 불타는 장로님은 이순(耳順) 나이에 또 하나의 도전을 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 중어중문학을 전공, 졸업했다.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어느덧 디지털 아니 인공지능 시대로 바뀌었다. 게임기와 컴퓨터, 그리고 내 손안의 세상 스마트폰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상징인 서예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만 못하지요. 불경기라 그런지 작품을 사는 사람도 드물어요. 서예만이 아니라 어른이고 아이고 손글씨도 잘 안 돼 이들을 위한 글씨 교정클리닉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한글전용 정책은 실패라며, ”우리말의 70%가 한자에서 유래됐는데 뜻도 모르고 쓰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일부 뜻있는 마니아들로 서예의 맥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며 한자 못지않게 우수한 한글 서예에도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기독교문화대상 수상

안빈낙도의 소박한 삶

2017년 그의 사역이 인정을 받아 21세기포럼이 주최한 제12회 기독문화대상 문화예술부문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수상소감으로 그 일을 십여 년쯤 했을 때 서예인들의 책상에 성경책이 놓여 있고, 말씀을 쓰고 가르치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서예인들이 성구를 쓰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호는 병암(幷巖)이다.(시편 89:26절, 고전 10:4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이 지었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의미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바위, 그는 그의 재능을 개인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복음에 빚진 자로서 나누기를 원했다. 그리고 문화의 불모지, 그것도 교인이 5% 밖에 안 되는 부산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무슨 사역을 하든지 지속적인 긴 호흡으로 고군분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것은 서예 공부를 하면서 얻은 끈질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는 성경서예작품을 10회 개최한 바 있으며, 30대 40대에는 공모작품(서예, 미술)에 대상, 특선, 입선 등 수많은 수상과 전시경력을 쌓았으며, 실력 있는 후학들을 많이 배출하여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인생의 단락마다 사자성어로 말해달라는 나의 질문에 은퇴기인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휴대폰으로 성경(욥기, 잠언, 아가, 전도서)를 사중언어(한글, 영어, 중국어, 한문)로 복음을 전하는 말씀의 배달꾼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의 잔이 넘치는(祝福滿溢),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고 있다. 나머지 삶은 인생의 본분을 지키며, 진리의 복음과 함께 소인묵객(騷人墨客) -말씀 안에서 시화를 즐기는 풍유가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염원했다.

여운부 장로의 가족은 부인 강득순 권사와 딸, 고신의대에 재직 중인 사위 서경원 교수와 외손자 셋이 있다.

2020 신년의 사자성어로 무엇이 좋은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지체 없이 易地思之면 좋겠다고 했다. 내로남불이 난무하는 세대에 차분히 한발 물러나서 거꾸로 자신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이리라. 돌아오는 용호동 해변에는 계절도 잊은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김길구 전 YMCA사무총장
▲김길구 전 YMCA사무총장

/김길구 전 YMCA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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