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 탐방 취재
본지,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 탐방 취재
  • 한국기독타임즈/교회복음신문
  • 승인 2020.01.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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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터미㈜ 드리미재단, 세브란스병원 방문
지리산선교유적보존연, 애터미와 보존협약

유통기업 애터미의 드리미재단 글로벌선교팀 단원들은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이 병원의 국제진료센터 인요한 소장에게 국내 의료선교의 역사와 의미를 들었다.(사진)

단원들은 의료 선교로 시작한 구한말 이 땅의 복음 전파와 광혜원, 세브란스병원 등에 대해 경청했다.

애터미()는 지난 101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보존연합과 협약을 맺고 지리산 선교 유적지 보존사업에 협력하기로 MOU를 맺었다.

드리미재단 측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는 말씀을 바탕으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크리스천 기업 애터미()와 함께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한길 애터미()회장이자 드리미재단 이사장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의

지리산 선교 유적지 보존 운동이란?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에는 우리나라 근대문화 역사와 한국기독교의 소중한 유산이 있다. 지리산의 선교사 유적지는 1895년 당시 미국과 영국, 호주와 캐나다 등 세계 각국 선교사들이 왕성한 선교활동을 했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풍토병으로 선교사와 어린 자녀들까지 67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휴 린튼선교사(1926-1984)가 1962년부터 노고단에서 조금 떨어진 왕시루봉 일대에 수양관을 다시 지었다. 사진은 노르웨이 선교사의 거처
▲휴 린튼선교사(1926-1984)가 1962년부터 노고단에서 조금 떨어진 왕시루봉 일대에 수양관을 다시 지었다. 사진은 노르웨이 선교사의 거처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여름철이면 병원균 서식을 억제하는 해발 1,200미터 고지로 올라가 생활하게 되는데 그 곳이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유적지다. 1921년부터 지리산 노고단에 수양관 56채를 지었다.

이들은 노고단수양관에서 구약성경을 한글로 변역하고 한글 문법을 만들고 한영사전을 만드는 등 근대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노고단수양관은 1940년대 일제의 강탈을 계기로 훼손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과 태풍 등으로 유적지 대부분이 소실됐고 망가져 현재는 흔적만 조금 남아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휴 린튼선교사(1926-1984)1962년부터 노고단에서 조금 떨어진 왕시루봉 일대에 수양관을 다시 지었는데 현재 가옥 10채와 교회 1, 창고 1채 등 총 12채가 남아있으며 선교사유적지를 기독교 유산으로 보존키 위해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이 설립, 보존운동을 펼쳐왔다.

지리산 노고단수양관은 1940년대 일제의 강탈을 계기로 훼손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과 태풍 등으로 유적지 대부분이 소실, 1962년 인근 왕시루봉으로 옮겨 선교사들의 거처와 선교관이 건축됐다.
▲지리산 노고단수양관은 1940년대 일제의 강탈을 계기로 훼손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과 태풍 등으로 유적지 대부분이 소실, 1962년 인근 왕시루봉으로 옮겨 선교사들의 거처와 선교관이 건축됐다. 사진은 눈에 덮힌 예배당

본지는 영. 호남지역에서 교육, 의료를 통해 복음을 전했던 미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자녀 등 67명이 풍토병(말라리라, 이질, 콜레라)으로 생명을 잃게 되자 수양시설로 피신했던 왕시루봉 선교관이 불교 화엄사 측의 반대운동으로 문화재청 등록이 쉽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2015515일경 지리산 1243m에 위치한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를 탐방, 보도한 바 있다.

김영은 기자 cgnnews@hanmail.net

 

탐방 취재기-‘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

지리산선교유적지 문화재청 등재만이 건축양식 보존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의 가치

지난 2009년 전문가들의 지리산 선교사 유적조사와 문화재적 가치연구용역 조사로 2011지리산 선교 유적지 심포지움을 개최, 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보존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써 소중한 문화 유산상을 수상한 지리산 왕시루봉(1243m) 선교사 유적지가 불교 측의 반대로 문화재청 등록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

예배당 내부
▲예배당 내부

불교계는 생태환경 파괴와 반달곰 서식지라는 이유를 들어 문화재청 등록이 아닌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화엄사 경내에는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 철거를 주장하는 내용이 붙어 있다.

. 호남지역에서 교육, 의료를 통해 복음을 전했던 미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자녀 등 67명이 풍토병(말라리라,이질,콜레라)으로 생명을 잃게 되자 수양시설로 피신했던 곳이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선교관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시설인지라 증, 개축이 불가해 붕괴 위험에 놓인 일부 수양시설이 제대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문화재청 등록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리산 선교사 유적지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선교 유적지는 개화기 인류문화적인 역사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양반들이 사용하던 한문을 천한 상민들과 온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 성경으로 번역했으며 또 번역 중 한글 문법을 최초로 체계화하고 정리하므로, 한글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미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나아가 왕시루봉에는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이 1,300미터 고지 위에 세운 건축 양식 등 현대사의 인류 문화적인 유물이 남겨진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관 옆에 조성된 연못(당시는 수영장으로 사용)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관 옆에 조성된 연못(당시는 수영장으로도 사용)

탐방취재-‘지리산 왕시루봉(1,300m)선교사 수양관

기자는 지리산 왕시루봉(1243m)선교사 수양관관리자의 안내로 탐방 취재에 나섰다. 2007~2026년까지 입산이 통제된 왕시루봉 등정은 쉽지 않았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새벽 5시에 출발, 하동에 도착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굵은 빗줄기로 바뀌어 왕시루봉에 올라 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지리산 입구에 도착했어도 비는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방수 등산복에 의지하며 산행에 나섰다. 정상까지는 5km. 입구에는 반달곰 서식으로 입산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문구를 보는 순간 산행 중에 반달곰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다. 장대비를 맞으며 계속 걸어야 하는 기자는 얼마가지 못해 땀과 비로 범벅이 됐다.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해지는 힘든 여정이었다. 쉬려고 해도 쉴 수가 없었다. 비가 쏟아져 쉴 공간이 없었고 우중이라 서둘러 올라가야만 했다.

숨이 차고 힘들어 몇 번이고 포기할 마음을 가졌지만 앞서 간 동료 기자들의 점심과 간식을 배낭에 담고 가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뚜벅뚜벅 뒤따라갔다.

비를 맞으며 오르는 험산이라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등반 초기 두려움을 가졌던 반달곰 출현에 내심 겁먹었던 생각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산을 오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위 극복과 체력 안배를 위해 몇 번이나 쉬면서 올라갔을 텐데, 다행히 쉼 없이 부지런히 오른 덕에 왕시루봉 정상이라는 돌판에 다다랐다.

고통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 봤다. 기자를 반기는 것은 정상에 만발해 있던 철쭉꽃이었다. 헬리곱터 착륙장도 갖춰져 있었다. 몇 백 미터를 더 올라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사 유적지에 도착하니 첫눈에 예배당이 들어왔다.

예배당에서 내려다 본 겨울철 지리산 해돋이
▲예배당에서 내려다 본 겨울철 지리산 해돋이

1962년에 지어졌음을 암시하는 ‘CHAPEL 1962’라는 간판이 예배당 건물 외벽에 붙어 있었다. 예배당 내부는 급히 앉으면 부서져 내려앉을 나무의자들로 놓여 있었다.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예배당 주변에는 50~100m 간격으로 나무판자 벽에 슬레이트 또는 양철 지붕을 댄 작은 건물 12채가 흩어져 있었다.

다양한 건축을 양식을 지녔지만 대부분 오래돼 곧 쓰러질 듯 보였다. 건물 내부에는 벽난로, 탁자, 침대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예배당 뒤 풀 무성하게 자란 테니스장 터와 주변 콘크리트 탁자와 삭은 벤치, 여름과 겨울에 다목적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 보이는 아담한 연못 등 풍토병을 피해 고지대인 이곳으로 피신한 선교사들의 삶과 휴식 공간의 흔적들이 대부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리산 왕시루봉선교사 유적지는 보존회서 파송 받은 분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키고 있었다.

선교관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은 절경이었다. 기자와 일행이 준비한 도시락은 꿀맛이었다.

지리산기독교선교사수양관을 조성한 고(故) 윌리엄 린튼 선교사에게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이 수여됐다.
▲지리산기독교선교사수양관을 조성한 고(故) 윌리엄 린튼 선교사에게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이 수여됐다.

하산 중 지리산 화엄사를 들려 경내에 붙은 자연환경 훼손 지리산 왕시루봉(1243m)선교사 별장 철거를 요구하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왕시루봉(1243m)선교사 별장을 조속히 철거하라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학습림에 존재하는 왕시루봉(1243m)선교사 별장이 등록문화재로 등재하는데 동의한 이유와 결정과정 정보를 공개하라

-문화재청은 왕시루봉(1243m)선교사 별장의 등록문화재 등재 시도관련 일체 자료를 공개하라

-대한불교회가 나서서 일체 유사사례 발생이 없도록 정부에 강력 요구해라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지리산 화엄사 쌍계사 등지 불교 사찰 유적복원 행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이와 관련, 사단법인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관계자는 불교 화엄사에서 자연환경 및 생태계 훼손 등을 이유로 지리산 왕시루봉선교사 유적지를 별장이라며 문화재청 등재를 반대하지만 선교사 유적지는 현재 자연을 훼손하며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등록되기 이전에 12개 동이 건립됐으며 지어진 건물을 보존 차원에서 문화재청에 등재하자는 것이기에 화엄사 측의 반대 철거 주장은 전혀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지리산 왕시루봉 정상.
▲지리산 왕시루봉 정상.

한편, 최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호남지역에서 병원, 학교, 복지 등으로 크게 기여한 기독교 선교사 유적지를 철거하자는 단체에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선교사 유적지 방문을 허락, 유적지 철거의 위협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 됐다. 특히 환경부는 이곳을 입산금지구역으로 묶어, 기독교인들의 방문도 제한, 화엄사 등 조계종 사찰들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문화재 지정을 못하도록 훼방하는 행태를 지켜만 보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시설을 외인별장(수양관)”이라고 부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부터 토지 소유주인 서울대 측에 선교사 수양관의 철거를 요청해 왔다.

이에 서울대는 20042월로 사용허가가 끝났다며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소장에게 무단점유 국유재산에서 퇴거할 것을 요청했다.

4대째 한국 선교사를 이어 온 인요한(본명 존 린튼)의 집안은 유진벨 재단을 설립,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을 벌였다.

출입금지 집중단속을 알리는 현수막
▲지리산 왕시루봉 등산로 출입구에 '출입금지 집중단속'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환경부는 2010년 주호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불교특혜 입법인 자연공원법개정안으로 국민의 세금에서 275억 원을 국립공원 내에서, 사찰들의 신축, 증축, 개축, 이축 등에 지원, 불교의 주장에 편승한 종교편향의 우려가 기독교 전반에 걸쳐 팽배하게 퍼져 있다.

부산작은교회희망연합 회장 이건재 목사는 불교 측 여러 형태의 지원이나 특혜에 기독교가 특별히 반대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일제 개화기에 열악한 조선 땅에서 교육과 의료, 복지로 한국의 근대화를 이루었던 점을 생각하여 종교 간의 갈등이 아닌 지리산 왕시루봉선교사 유적지가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반드시 문화재청 등재가 이뤄져야한다고 피력했다. 이 목사는 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선 한국교회가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김희정 부장cgnnews@hanmail.net  /본지 김성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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