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 대표 최인석 변호사
대담/‘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 대표 최인석 변호사
  • 한국기독타임즈/교회복음신문
  • 승인 2019.05.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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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퇴임과 함께 법률사무소 개업, 변호사 활동
부산진기독실업인회 섬기며 사회 속 선한영향력
지난 2월 울산지원장을 퇴임하면서 '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를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인석 장로.
▲지난 2월 울산지원장을 퇴임하면서 '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를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인석 장로.

평소의 좌우명은 에스더의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말,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이다.

판사로 있으면서 신앙을 위하여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때가 많았다. 이 말이 저를 늘 나서게 했으며 용기를 주었다.

대담/‘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 대표 최인석 변호사

 

최인석 변호사는 사천이 고향이며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6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16기로서 판사에 임용, 제주지방법원장을 제외하면 줄곧 부산고등법원 산하의 법원에서 근무했다.

판사재임시절인 지난 2007<다음>카페 '좋은 사법세상을 찾는 모임' 회원들의 투표와 일련의 선정과정을 거쳐 올해의 국민의 판사로 선정된 바가 있다.

거창지원장, 통영지원장, 창원지법 수석부장판사,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부산동부지원장, 부산가정법원장, 제주지방법원장, 울산지방법원장을 차례대로 거쳐 금년 2월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2년간의 판사생활을 마감하고 퇴임했다.

최인석 변호사는 퇴임사에서 “32년간 판사를 하면서 자랑이 있다면 저는 한 해도 쉬지 않고 재판을 했다. 로스쿨 학생들이나 법대생들과 대화하는 자리에 가면 평소 가슴에 품고 사는 좌우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저는 내일이라도 변호사 한다.”고 답하면 다들 웃는다. 내일이라도 변호사 한다는 뜻은 소신껏 살겠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일이라도 변호사 하려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에게 갑이 되거나, 내 고객이 될 수도 있는데 성의를 다해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고 을 입장의 변호사 길을 예고했다.

또 후배 판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남아계신 판사님들께 감히 한 말씀만 드리자면 헌법 정신에 투철한 재판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체의 자유, 구체적으로 불구속 재판의 원칙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양쪽으로 갈라서서 싸우고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판사는 헌법을 보고 나아갈 길을 정해야지 콜로세움에 모인 관중의 함성을 듣고 길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퇴임 후 변호사 최인석 법률사무소를 개업, 변호사로 탈바꿈했다. 판결하는 판사에서 이제는 수임 받은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부산진기독실업인회(CBMC)를 섬기는 최인석 변호사(판사퇴직과 함께 창원 서머나교회 시무장로도 사퇴)를 조찬 경건회서 만나, 판사시절과 2개월 남짓한 변호사 생활 등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재판정에서...
▲ 재판정에서...

-32년간의 판사생활을 마감하시고 변호사로 활동을 하시는데, 소감을 들려주신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법원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여전히 소송사건을 다루고 있고, 여전히 사람들은 저를 원장이라고 부르고 있고, 여전히 옛날부터 알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처자식뿐만 아니라 사무실 직원들까지 먹여 살려야 합니다. 부양가족이 더 늘어난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변호사로서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판사와 변호사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밥상으로 따지자면 변호사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인데, 판사는 차려진 밥상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판사는 이쪽저쪽의 입장을 다 바라보아야 하는데 변호사는 내가 맡은 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면 됩니다.

판사는 아무나 만나면 안 되는데 변호사는 아무라도 만나야 합니다. 판사는 남에게서 봉투를 받으면 안 되는데 변호사는 남에게서 봉투를 받아야 생활을 유지합니다.

판사 할 때는 아래위나 세상의 눈치 안보고 고고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좋은 점이었습니다. 반면 변호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판사보다 낫고, 자유스러운 점이 낫습니다.”

방주교회를 배경으로...
▲방주교회를 배경으로...

-창원지법 부장판사 시절인 2004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측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면서 대통령 친인척이 폼 내고 살면 그 부담이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만큼 처신을 조심해 물의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3분 동안 훈계를 해 사법부의 다른 역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재판 직후 노건평 씨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을 재판을 소개하신다면?

“32년 동안 계속 재판을 하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재판은 많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는 모든 사건에 정성을 기울이려고 애썼습니다. 칭송을 받기도 했고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판결도 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판결은 상급심에 가서 깨진 판결들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되고 저를 다시 성장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교차로에서 차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 운전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는 판정이 나자 민사든 형사든 할 수 있는 재판이나 절차는 다 하였습니다. 저도 그 수많은 재판 중의 하나를 재판장으로 맡았습니다. 그는 어디서도 자기주장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재판을 맡았던 판사, 검사, 경찰관 모두를 고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빠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재판장으로 있는 저희 재판부였습니다. 고소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서 어떻게 당신네들만 빠질 수가 있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해달라는 절차를 모두 다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넘치도록 해주었다. 그랬음에도 당신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판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일로 저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는데도 감사 편지를 받은 경우입니다. 검사는 죄질이 너무 나쁘니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심리를 끝내고 판결을 선고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질은 나쁘다.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는 경우다. 그러나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도 못했다.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늘 냉대를 받고 살았다. 우리 사회나 국가가 당신에게 뭘 해준 게 있다고 목숨까지 빼앗겠나. 무기징역으로 족하다.” 그 사람은 90도로 절을 하고 울면서 갔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지나서 제게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자기가 교도소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그랬더니 원망스럽기만 하던 세상이 달리 보이고, 사지육신이 멀쩡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 줄 알겠더라고... 저는 그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32년간 판사를 하면서 한 해도 쉬지 않고 재판을 한 것으로 압니다. 군인으로 치면 30년간 야전에서만 산 것과 비교됩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재미있었으니까요. 옛말에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요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재판하고 판결 쓰는 것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60이 넘어서고 이제 판사로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재판하는 것에 더 애착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우리가 잘 아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 프란츠와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법복을 입고...
법복을 입고...

-판사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대법관 제안 때마다 검증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요?

! 그걸 어떻게 아시고... 저는 왜 검증에 동의하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혹시 검증에 동의하였다가 덜컥 지명이라도 받으면 어떡하려고?”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대법관 검증에 동의하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 제 그릇이 그 일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둘째 저는 가진 재산이 너무 없어서 6년간 대법관을 지내고 오면 노후 대책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이 들어서 일할 수 없기 전에 얼마 동안이라도 변호사를 해야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천종호 판사님과 함께 문제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고 챙겨 오셨던 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라면?

일은 천종호 부장판사와 가정법원 직원들이 다하고 저는 뒤에서 후원만 하였습니다. 가정법원에 근무하면 누구나 그런 마인드를 갖게 됩니다. 몰라서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문제아(듣기 좋게 위기청소년 어쩌고 하지만 저는 그냥 문제아라고 합니다)들을 만나보니 아이들 자신의 문제보다 가정의 문제, 사회의 문제입디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공부 잘하고 착실한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두어도 알아서 잘 커나갑니다. 그러나 문제아들은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신경을 많이 써주어야 제대로 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원장을 역임하실 때는 재판을 맡지 않으셔도 될 텐데, 평판사처럼 재판을 맡으신 것은?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재판하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보람도 있고..., 판사는 재판을 하기 위해 판사하는 것이지 법원장을 하기 위해 판사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판사의 본질은 재판에 있지 높은 벼슬을 지내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법원장, 지원장 등 유난히 기관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원장실에 앉아있을 때보다 법정에 가서 앉아 있을 때에 저의 판사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터사역사명자대회서 축사
▲일터사역사명자대회서 축사

-신앙인으로서 판사, 법원장을 수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뒤따르지 않았는지요?

판사는 독립성이 강한 직업이기 때문에 제 신앙을 지키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만, 법원장을 맡고 있으면 회식 때 원장이 술을 마시지 않으니 회식자리가 너무 냉랭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낸 것이 빈 소주병에 물을 채워서 회식자리에 들고 가서 저는 소주잔에 물을 따라 마시고 다른 사람들은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분위기 조성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소주병에 물이 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저는 오고가는 정이 중요하지 잔에 든 알코올의 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장로찬양단원으로서...
▲장로찬양단원으로서...

-변호사님의 평소 좌우명과 변호사로서 앞으로 비전이라면?

평소의 좌우명은 구약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에스더의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말,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입니다. 판사로 있으면서 신앙을 위하여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이 저를 늘 나서게 했습니다. 용기를 주었습니다.

앞으로의 비전은, 제가 개업 인사장에 썼던 말, “앞으로 돈 되는 일뿐 아니라 그늘진 곳에도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대로입니다.”

한국기독타임즈/교회복음신문 사장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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