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럼/주필 정선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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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하성뉴스
  • 승인 2018.03.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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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봄은 오고 있는가!

 

부활의 봄은 오고 있는가!

-주필, 시인-부산일보 편집부국장-부산일보 논설주간
-주필, 시인
-부산일보 편집부국장
-부산일보 논설주간

봄소식을 알리는 3월이 가고, 어느덧 4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세상은 온통 들쑤시고, 털고, 뒤집고, 까발리고, 잡아넣는 살벌한 풍경의 연속이다. 부활이 아니라 살인 게임이 날이면 날마다 판을 키워 왕조시대의 피 비린내 나는 사화(士禍)를 연상시킨다. 촛불광장에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손발을 꽁꽁 묶어 두 사람을 동시에 감옥에 가두는 희대의 사건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잔혹한 계절이다. 정권이 바뀌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석연찮은 사건들이 또 적폐로 몰려 청산 대상이 될 것이고, 보복은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배워야 하는데도 막무가내다. 만델라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정치보복을 했더라면 아마도 수만 명의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고, 만델라에게는 노벨평화상도 없었을 것이며 그의 말년은 비참했을 것이다. 전 정권의 적폐를 캐려고 들면 끝이 없다.

과거는 인간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칠 힘이 없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회상하는 과거의 빛 속에서 눈을 떠 스스로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칼 야스퍼스는 말했다. 땅을 딛고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땅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때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일몰(日沒) 앞에 서게 된다. 노을 비낀 거리에 표표(飄飄)히 서서 회한(悔恨)에 젖어 눈물 흘리기 전에 맺힌 것을 풀어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때로는 장래에 대한 예견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에 있기도 하다. 적폐청산을 주창하는 것도 일단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되거나, 혹은 청산되지 않으면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현재를 괴롭힐 뿐 아니라 미래를 가로막을 수 있다.

그러나 만사는 때와 장소가 있다. 어느 특정집단의 의도나 정권의 목적에 의해 과거를 들춘다면 과거사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고 말 것이다. 적폐 청산은 고사하고 청산집단의 그럴듯한 치장과 명목에 그치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과 악순환을 불러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게 될 것이다.

과거사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으며, 과거사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색깔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 하여, 시대가 변할 때마다 시대정신에 어긋났다 하여 과거사를 적폐로 규정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시작하면 과거사는 누더기가 되어 청산 불가능한 과거사로 변형되고 말 것이다. 비록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정부가, 법과 제도의 합리적 기준을 적용하여 적폐를 명쾌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번 거르고 지나간 과거사는 역사에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치집단이 바뀔 때마다 과거사를 입맛에 맞추려 한다면 난장판이 되고 만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 모든 기준에 맞는 과거사 청산이란 있을 수 없다. 시도 때도 모르는 과거사 청산은 자기 구미에 역사를 꿰맞추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적했다. “박 대통령에게 '국정 소홀'의 책임을 묻는다면 모를까 '국정 농단'은 너무나 번지수가 틀린다. 박 대통령에게는 '국정 농단'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국정 농단은 중국에 굴욕 외교를 하면서 국가 안보의 보루인 한·미 동맹의 기둥뿌리를 삭이려 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오만불손한 북한에 끌려 다녀서 국격을 낮추고, 대한민국의 가치와 정체성을 파괴할 개헌을 구상하고, 탈 원전 정책, 최저임금 인상과 강성 노조 지원 등으로 나라의 경제 기반을 붕괴시키는 것이 국정 농단 아닌가.”

윤석민 서울대언론정보학과 교수도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보복정치를 일삼는 구태를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답답하고 퇴행적인 정책 파행이 거듭되고 적폐 청산을 명분 삼은 보복의 정치가 점입가경 양상을 보일수록 협치(協治)를 앞세워 이념, 지역, 세대를 아우르는 안희정의 리더십은 돋보였다. 그는 새 정치의 희망이었다.....이념·진영·파당·지역으로 갈라지고 근시안적 당리당략과 정치 보복으로 얼룩진 후진 정치를 '협치''탈이념의 정치' '합리성의 정치'로 탈바꿈시키려던 안희정표 '새 정치'의 꿈 역시 속절없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 정치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싶다. 그가 선도했던 정치 개혁의 꿈을 열렬히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안희정의 몰락은 너무도 아프다.”

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이 돌연 사퇴를 선언하면서 내놓은 입장문이 문재인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적폐를 폭로했다. “방문진법에 방문진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호선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앞세워 청와대가 낙점해왔고 이사회는 그 요식 절차를 수행해왔다고 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언론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과 정면 배치되는 발언이다. 정권이 바뀌면 적폐로 지목되기에 충분한 죄목이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바람 부는 대로 봄날이 간다. 때로는 비바람이고, 때로는 황사바람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풍이고, 마구 뒤집고 엎어버리는 태풍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바람이다. 갓 핀 꽃잎을 무지막지하게 떨어트리고, 잘 자란 나무둥치를 흔들어 넘어뜨리는 심술궂은 바람이다. 부활의 계절에 죽음의 칼바람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정치는 시대착오적인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고,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거친 말발굽에 짓밟혀 만신창이로 나뒹굴며, 사회는 생뚱맞은 미투로 냄새나고 더러운 하수구에 빠진 생쥐의 몰골을 하고 있으며, 복지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퍼주기에 바쁘다 보니 정작 가슴 따스한 계절의 부활은 실종되었다.

수렁에 빠진 우리에게 진정 부활의 봄은 오고 있는가. 혹독한 겨울이 뒷모습을 숨기고 저만치 가고 없는데, 벌써 화사한 봄이 개나리꽃잎에 노오랗게 물들어 손짓하고 있는데, 여태 적폐청산이라는 과거사에 얽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라꼴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길도 없는 골을 숲으로 찾아드니/눈에 덮인 가지 눌렸다 일어나고/간간한 따스한 바람 품안으로 드러라-이병기의 시조 <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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