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 주필 정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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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타임즈
  • 승인 2018.02.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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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인생'
▲주필 정선기 장로는 부산일보 편집부국장, 논설주간을 역임했으며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필 정선기 장로는 부산일보 편집부국장, 논설주간을 역임했으며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개 같은 세상

옛날 임실 둔남의 어느 산골에 사는 농부가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취해 돌아오는 길에 산기슭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때 산불이 나서 산기슭이 불길에 휩싸이자 개는 주인을 구하고자 짖어대고 옷깃을 끌어도 보았지만 깨어날 줄 몰랐다. 개는 산 밑 개울로 뛰어 내려가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이 잠든 주변의 풀에 물을 뿌렸다. 이같이 물 뿌리기를 수 십 번해서 주인을 불에서 살린 개는 대신 불에 타 죽었다.’

전북 임실의 오수견(午睡犬)과 경북 구미의 의구총(義狗冢), 의견비(義犬碑)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개 방죽, 개 고개 같은 지명들이 숱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 중종 때에 나주목사를 지낸 정엄(鄭淹)의 양림동에서 기르던 개가 천릿길 한양의 조정까지 왕래하며 중요한 문서를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인 살린 충견(忠犬) 이야기가 미국에도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 센터톤에 사는 빌 번스(Burns)가 주인공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그가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매일 산책을 했다. 어느 날 옥수수밭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어둡고 인적도 없어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 두 시간이 흐른 밤 11시쯤 도로변에서 과속 차량을 단속하던 보안관이 옥수수밭 쪽에서 불빛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차를 몰고 가보니 개가 손전등을 주둥이에 문 채 마구 흔들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또 한 마리는 쓰러진 주인의 몸 위에 누워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안관은 불빛이 없었다면 결코 환자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개들을 칭찬했다.

우리는 저질의 불량인을 가리켜 흔히 개 같은 놈’, 아니꼽고 치사한 세상을 가리켜 개 같은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잘못된 비유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개만도 못한 놈’, ‘개만도 못한 세상이라야 한다. 개는 저질불량하지도 않고 아니꼽고 치사하지도 않다. 개처럼만 하면 의로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다만 개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것 뿐, 함부로 낮추어 입에 올릴 동물이 아니다. 아주 더럽고 불쾌한 일에 개 같은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죄 없는 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친일파 김윤식이 죽었을 때 박영효 등 그의 일파들이 사회장(社會葬)을 주장했다. 그러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를 어떻게 사회장으로 치르느냐는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게 중에는 김윤식을 개 같은 놈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갑론을박을 듣고만 있던 이상재 선생이 태연히 입을 열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대접을 한 셈이지” “아니 개라고 한 게 대접을 한 거란 말이오?” 월남은 침착하게 덧붙였다. “그래도 개는 주인을 알아보거든

수년 전 국민을 ·돼지라고 한 공무원의 발언에 야단법석을 뜬 일이 있었다. 그것은 진짜 개, 돼지, 혹은 개·돼지로 대변되는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멸시의 시선이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라는 말에는, ‘인간은 짐승처럼 미천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동물들처럼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물론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개만도 못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혼자서 연기하는 코미디언처럼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생물 선생님처럼 우리를 가르쳐주고, 체육 코치처럼 우리를 운동시켜주고, 아내나 남편처럼 우리를 편하게 해주며, 아이들처럼 우리를 사랑해주고, 정신과 의사처럼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성직자처럼 우리의 고백을 들어주고, 의사처럼 우리를 낫게 해 준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개를 두고 한 말이다. 이렇게 고마운 존재를 사람은 쉽게 배신한다.

올해가 무술년(戊戌年) 황금개 해다. 개만큼 우리 인간과 오랜 기간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온 동물도 없을 것이다. 개는 약 1만 년 전 신석기시대에 가축화가 이루어진 인간의 가장 오랜 동물 친구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400여 품종을 넘는 개가 존재한다. 가축화된 여러 동물 중에서도 인간과 유독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개는 현대사회에선 애완(愛玩)’을 넘어 삶을 함께하는 반려(伴侶)’의 수준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개의 주요 심리적 신체적 특성으로는 높은 지능, 충성심, 적응력, 성취욕, 귀소본능, 뛰어난 청각과 후각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의 지능은 영아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탁월하다. 주어진 과업에 대한 성취욕구가 강해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치면 인명구조, 탐지, 경비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특유의 방향탐지 감각으로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영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세상 공부하는 것이 '개의 공부'라고 썼다. ", , , , ,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 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개의 공부'. 개의 활달한 움직임은 구르는 원형의 바퀴처럼 동적이고, 활기찬 동물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보다는 마음을 알 수 있는 개와 동반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개가 도둑을 지키는 수준에서 인간의 고독을 지키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친구가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영국 속담에 내 개는 나의 친구, 내 아내는 나의 적, 내 자식은 나의 주인이라 했을까. 러시아에서는 개는 아내보다 분별력이 있다. 주인에게는 짖지 않는다고 했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기심 없는 친구, 그를 버리는 일이 없고 배반하는 일이 없는 친구는 그가 키우는 개다, 라고 한 G.G.베스트의 말은 배신의 시대를 빗댄 명언이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우글대는 세상에서, 비록 짐승이지만 개만한 인간이 있는가 묻고 싶다. 알량한 심보, 얄팍한 술수, 괴팍한 성정, 비굴한 행사, 치사한 아첨, 뒤틀린 심사, 삐뚤어진 양심, 교활한 수작, 헝클어진 자세로 타락한 인간세상에서 의롭고 충직한 개에게서 배우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이제부터는 개 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 일이다. 혹여 개만도 못한 자신이 되어 있지 않은가 돌아보는 무술년 개의 해가 되었으면 한다.

산촌에 밤이 드니 먼데 개 짖어온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 잠든 달을 짖어 무삼 하리요.-천금(千錦)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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