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칼럼 / 주필 정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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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타임즈
  • 승인 2018.02.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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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에 산다
▲주필 정선기 장로는 부산일보 편집부국장, 논설주간을 역임했으며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필 정선기 장로는 부산일보 편집부국장, 논설주간을 역임했으며 부산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내 복()에 산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했다. 복 있는 사람의 전제조건으로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여야 한다.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은 의인과 동격이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며 의인이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터득한 행복의 조건을, 어떤 철학자나, 뛰어난 인물보다도 행복에 대하여 예리하고,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호화찬란한 번영을 누리며, 행복을 추구했던 솔로몬 왕도 자신의 인생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아브라함=으로 선포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자로 세우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 1-3)

"복 있다"는 말을 최고의 찬사로 여겨 온 우리 민족은 복 받기를 원하는 꿈과 소망을 안고 산다. 무술년 새해가 밝자 너도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최고의 인사말이 되었다. 교회에서도, 시장통에서도, 관공서에서도 온통 복타령이다. 복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받을 그릇이 없어 못 받을 지경이다. 엄청나게 많은 복을 받았으니 올해는 복이 철철 넘치는 한 해가 될 터인데, 그게 그렇게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복은 받고 싶다고 받는 것도, 주고 싶다고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노력과 정성으로 복의 근처에 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복의 실체는 전적으로 인간한계를 넘어선 불가사의한 것,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인간은 우선 눈에 보이는 복, 즉 재물, 명예, 권력, 무병장수를 추구한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보다 많이 소유하고, 보다 많이 쌓아놓고, 보다 크게 성공하는 것, 그래서 큰 소리치고, 다스리고 군림하려는 것을 복으로 여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자기 행복을 위해 양심이나 인격을 팽개치는 것이다. 전도자는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탄식했다. 성경적인 복은 하나님께 꿇어 엎드리는 사람이 마음에 누리는 평안과 기쁨, 감사다. 진정한 복은 영적 형통이다. 영적으로 자유자가 되어 주의 말씀대로 사는 복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실패할 때도 넘어질 때도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선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10) 야베스에게 내린 하나님의 복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다.

진안지방의 구전 설화. ‘아버지가 하루는 세 딸을 모아 놓고 누구 복으로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첫째와 둘째 딸은 아버지 복으로 먹고 산다고 했으나, 셋째 딸은 내 복으로 먹고 산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괘씸하게 여기고 막내딸을 집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셋째 딸은 거리에서 거지를 만나 살림을 차린 뒤에 남편한테 집에 올 적마다 뭣이라도 한 가지씩 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그러자 남편은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돌을 들고 왔는데, 각시가 보니 금덩어리였다. 각시는 모아둔 돌을 하나씩 주면서 장에 가서 팔아오라고 시켰다. 금덩어리를 팔아 부자가 된 셋째 딸은 새로 집을 짓고 대문을 달면서 목수한테 대문을 열 때마다 상계수~’라는 소리가 나도록 부탁했다. 그 사이에 친정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동냥을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집 대문을 여니 상계수~’라는 셋째 딸 이름이 들렸다. 하도 이상해서 몇 번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중에 딸이 나와서 아버지와 상봉했다. 아버지는 딸을 붙잡고 니 복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맞구나라며 울었다. 그 후 딸은 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했다.‘는 이야기.
유교에서는 다섯 가지의 복(), (-장수하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강녕(康寧-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 고종명(考終命-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꼽는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원했던 오복(五福)은 치아가 좋은 것, 자손이 많은 것, 부부가 해로하는 것,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명당에 묻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오복은 무엇일까? 현대판 오복은 첫째, 건강한 몸, 둘째, 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와의 해로(偕老), 셋째, 자식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 소유, 넷째,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 다섯째로는,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오복(五福)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복이란 무엇인가? ()을 한자로 풀이하면, =보일(공급할) ()+한 일()+입 구()+밭 전() 이다. 한 사람의 먹고 살 땅을 공급한다는 뜻이다. 성경적으로 풀이하면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나란히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영생의 복을 누리고 있다. 복을 받으려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나눠주는 복 공급소이다. 오복도 대단한데 예수님은 팔복을 선포하셨다. 마태복음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여는 첫 설교인데, 그 주제가 에 대한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은, 우리가 복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복의 정의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셨기에 산상수훈 중에서도 팔복을 제일 먼저 다루었다. 팔복의 복이 있도다, 헬라어로 마카리오스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삶이 진짜 복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진짜 복을 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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